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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멸 위기…어떻게 극복하나]안경 제조기술 바탕 의료산업 뛰어들어…산업기반 인구 유출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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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이현 사바에시

사바에 시내에 위치한 안경의 거리. 신세희기자
사바에 시내에 위치한 안경의 거리. 신세희기자

사바에시는 일본 후쿠이현 북부에 위치한 인구 7만의 소도시다. 이 도시를 찾는 방문객들이 느끼는 첫 인상은 ‘조용함’ 혹은 ‘평범함’에 가깝다. 바다나 호수, 높은 산에 인접해 있거나 유명 축제가 열리는 지역이 아니기에 단순 관광으로 사바에를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현지인들조차 ‘사바에’라는 지명만 들어선 고개를 갸웃할 정도다.

하지만 여기에 ‘안경’이 키워드로 더해지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일본 내 안경테 생산의 90% 이상이 이 지역에서 이뤄질 정도로 안경 산업에서 사바에의 명성은 대단하다. 일본에서 사바에산 안경이라면 고급 제품으로 통한다. 유럽, 미국 등 해외에서도 사바에 안경은 높은 선호도를 자랑한다. 1905년, 농한기 생존을 위해 시작했던 산업이 일본은 물론 세계 소비자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사바에 산업의 성공 비결은 ‘모노즈쿠리’으로 요약된다. 선대에서 후대로 기술을 전수하고 발전시키는 장인정신이 섬세함을 요하는 안경 산업과 맞아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산업 발전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자리는 젊은 인구를 유인한다. 이에 집중해 사바에시는 더 큰 내일을 그리고 있다. 안경 제조기업들의 정밀 기술을 의료, 항공 등 첨단 기술에 접목시켜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안경의 도시 사바에의 전경. 신세희기자

■‘안경의 도시’ 사바에=지난 6월 찾은 사바에시는 한적한 분위기였다. 낮은 키의 주택들, 여유롭게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은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도시로 들어서는 길목, 산 중턱에 걸린 안경모양 간판만이 ‘안경의 도시’에 방문했음을 실감케 했다.

변화가 느껴진 것은 안경 박물관에 가까워지면서부터였다. 빨간 안경 그림이 그려진 가로등과 벤치, 자판기 등을 지나치던 와중 집집마다 걸어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간판에는 안경테, 렌즈 따위를 제작·판매한다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거주용 주택인줄 알았던 건물 중 상당 수가 안경 공장이자 매장이었던 셈이다.

실제 사바에는 일본에서 ‘사장이 가장 많은 도시’로도 불린다. 이 지역에는 안경 제조의 전 공정을 담당하는 대형기업부터 안경다리, 코받침, 렌즈 등 각각 부품을 만드는 소기업까지 다양하게 분포해있다. 안경 산업이 말 그대로 도시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바에에서도 처음부터 안경 산업이 부흥한 것은 아니었다. 후쿠이현 북부에 위치한 사바에는 과거부터 춥고 척박한 지역으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겨울마다 가난에 시달렸는데, 생계를 유지하고자 1905년 농한기 부업으로 안경 제조를 시작했던 것이 안경 산업의 시초가 됐다. 초창기에는 타 지역 장인을 불러다 안경 제조 기술을 전수받았지만 100년 넘게 안경 제조업을 이어오면서 사바에만의 기술력을 인정받게 됐다. 그 결과 오늘날 사바에는 ‘made in japan’ 표식을 단 안경제품 중 96%를 생산하는 대표 안경 도시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사바에 시내에 위치한 안경 공방. 신세희기자

■경제불황과 함께 닥친 위기 첨단산업 도전으로 극복=사바에시에도 위기는 닥쳤다. 1990년대 경제 버블이 붕괴하고 공장식 대량생산이 주된 흐름이 되면서 저가 제품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산 제품이 점유율을 키우고 ‘메가네이치바’, ‘메가네슈퍼’로 대표되는 저가형 매장이 인기를 누리자 사바에의 안경 기업들은 고전을 겪어야 했다. IT, 항공, 의료 등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며 안경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사바에시의 안경 관련 제조업 매출은 1992년 1,144억엔에서 2011년 539억엔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관련 기업 수는 900여곳에서 500여곳으로 줄었다.

사바에시는 놀라운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100년 이상 대대로 연마해온 제조 기술을 토대로 첨단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안경은 가볍고 튼튼한 설계로 착용 시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특히 사바에 기업들은 1975년 말 세계 최초로 티타늄 금속을 활용한 제조법을 확립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의료기기와 항공, 우주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일치했다.

실제 사바에에서 시작된 일본 최대 안경테 메이커 ‘샤르망’은 2012년부터 핀셋을 비롯한 의료용 수술기구를 생산하고 있다. 안경테 제조 기술을 통해 축적한 티타늄 정밀 가공 기술을 활용해 가볍고 정밀하면서도 우수한 내구성의 제품력을 선보이고 있다. 또 다른 사바에의 기업 닛세이는 티타늄 소재 안경나사를 제조하던 기술을 살려 2022년부터 치과용 임플란트 부품을 만들고 있다.

사바에의 또 다른 전통 산업인 섬유 분야에서도 강소기업들의 성과는 상당하다. 1944년 설립된 섬유회사 후쿠이다테아미는 자체 섬유 가공 기술을 활용, 인공혈관을 개발했다. 또 다른 섬유기업 세이렌은 현재 의료, 우주항공, 스포츠 분야에 진출한 상태다.

세키모토 미츠히로 사바에 SDGs 추진 센터 고문은 “안경테 하나를 제작하려면 200여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며 “대대로 이어져온 장인정신과 세심한 기술력이 있었기에 소규모로 시작한 제조기업들이 첨단기업으로 성장하는 일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사바에 시에 위치한 안경 박물관. 안경의 역사를 볼 수 있으며 사바에에서 만든 안경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신세희기자

■고향 사랑교육으로 청년 인구 유출 방지=산업 활성화 노력은 인구 성장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사바에시의 인구는 지난 9월 기준 6만8,315명으로 집계됐다. 1970년 5만3,036명, 1980년 6만439명, 1990년 6만3,022년, 2000년 6만6,194명, 2010년 6만6,194명을 기록하는 등 완만한 증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바에시 역시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 층이 사라지는 문제다. 대학이 없는 사바에시의 특성상 대부분 청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위해 타 지역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다시 지역에 돌아와 제조기술을 이어가려는 수요가 낮은 상황이다. 이에 사바에시는 ‘근본’으로 되돌아가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하는 고향 교육으로 미래 세대에게 사바에시의 환경과 산업, 역사를 알려주고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방식이다.

사바에시 정책경영부 종합정책과의 야마기시 마사요씨는 “어린이와 청년들은 향후 사바에시를 이끌어갈 미래 구성원”이라며 “도시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공감을 구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교육이 진행된 이후 대학을 위해 타지로 나간 학생 중 절반 이상이 다시 사바에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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