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펜싱 남자 대표팀이 올림픽 사브르 단체전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대업'을 이뤘다. 펜싱 단체전 3연패는 아시아 최초다.
아울러 팀 에이스 오상욱(27·대전광역시청)은 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2관왕 영광도 함께 누렸다.
오상욱,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 박상원(23·대전광역시청), 도경동(24·국군체육부대)으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헝가리를 45-41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한국은 2012년 런던,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2연패(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는 종목 로테이션으로 제외)에 이어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3연패를 달성했다.
이번 대회 펜싱 경기 첫날인 지난달 28일 대한민국 선수단에 파리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겼던 오상욱은 단체전도 제패하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 첫 2관왕에 올랐다.
앞선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2000년 시드니 대회 남자 플뢰레의 김영호, 런던 대회 여자 사브르의 김지연, 리우 대회 남자 에페의 박상영은 단체전에선 우승하지 못했다.

또한 이번 우승으로 한국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올림픽 펜싱 단체전 3연패의 주인공도 됐다.
대표팀의 기둥인 오상욱과 구본길은 각각 개인 3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날 8강전에서 캐나다를 45-33으로 격파한 한국은 홈 팬의 압도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개최국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선 접전을 펼친 끝에 45-39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지난 대회 단체전 동메달을 딴 전통의 강호 헝가리와의 결승전도 피말리는 접전의 연속이었다.
개인전에서 첫 경기 충격패로 4회 연속 금메달이 불발된 헝가리의 간판 아론 실라지를 상대로 박상원이 첫 라운드 5-4 우위를 점하며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구본길과 언드라시 서트마리의 3라운드에서 15-11로 격차를 다소 벌렸다.
하지만 25-22에서 시작한 6라운드에서 오상욱이 서트마리를 상대로 특유의 런지를 활용한 공격이 통하지 않으며 연속 득점을 허용, 25-26으로 역전을 당한 뒤 시소게임이 이어졌다.

오상욱이 어렵사리 30-29로 6라운드를 마친 뒤 7라운드에서 한국은 구본길을 도경동으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고 앞서 단체전 8강, 준결승에도 뛰지 않아 이번 대회 처음이자 마지막 출전 기회를 얻은 후보 선수 도경동은 빠른 공격을 앞세워 러브를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5점을 내리 뽑아내 35-29로 벌리며 승기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팀 내 가장 공격력이 날카롭다는 동료들과 원우영 코치의 평가처럼 한참을 몰아쳐 크리스티안 러브를 그야말로 압도했다.
이 '폭풍 5득점' 덕에 한국은 7라운드에서 35-29로 벌리며 승기를 잡았다.
지난해 4월 입대한 도경동은 본래 오는 10월 전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 특례 혜택 대상자가 되면서 전역 시점도 두 달가량 당기게 됐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도경동은 '군 복무 기간을 다 채울 생각이 없냐'는 짓궂은 농담에 "(군에서) 나와서 펜싱을 더 열심히 하는 걸로 하겠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도경동은 "선수로서 최종 목표가 금메달이었다. 그걸 바라보고 운동해왔는데 목표를 이룰 수 있어 꿈만 같다"며 "개인적인 기쁨보다 우리 펜싱의 새 역사, (단체전) 3연패를 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상욱이 형도 2관왕을 이뤄서 내가 정말 축하했다. (우리는) 지금 오상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어 박상원과 서트마리의 8라운드에서 40-33으로 앞서며 여유를 지키던 한국은 오상욱이 실라지와의 '에이스 맞대결'에서 다소 급한 모습을 보이며 추격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끝까지 분투해 금메달을 지켜냈다.
한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막내였던 구본길은 도쿄에선 김정환에 이어 둘째로 함께 팀을 이끄는 입장이 됐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김정환이 떠나면서 대표팀의 맏형이 돼 이번 올림픽을 준비했다.
개인전 첫판 탈락의 충격으로 단체전 초반까지 부담감 속에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해 동생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 뻔했으나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 특유의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하며 뒷심을 발휘했다.
구본길의 '금빛 라스트 댄스'는 조만간 둘째 아들이 태어날 예정이라 더 의미가 커졌다.
홑몸이 아닌 아내 박은주 씨의 곁을 지키지 못한 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올림픽만 바라보며 구슬땀을 흘렸던 그는 첫째 '우주'까지 돌보느라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금메달을 바치겠다고 강조해왔는데, 멋지게 약속을 지켰다.
"둘째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이룰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이번 남자 사브르의 금메달을 포함해 한국은 하계 올림픽 메달 300개를 채웠다.
도쿄까지 총 287개의 메달을 획득한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12개의 메달을 가져왔다.
여기에 런던 대회 때 역도 남자 최중량급(105㎏ 이상)에서 4위에 올랐던 전상균이 기존 동메달리스트 루슬란 알베고프(러시아)의 도핑 테스트 적발로 뒤늦게 이어받게 된 동메달을 포함하면 300개가 된다.
한국 펜싱은 오는 3일 열리는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 마지막으로 출격해 메달 추가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