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그나마 노동조합의 결성과 가입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보장되어있지만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노동조합은 ‘불법’과 ‘과격’, 심지어 ‘용공’이란 수식어가 붙어 언론에 등장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조합의 합법적 쟁의활동을 보는 일부 언론의 시선과 태도는 여전히 나아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직군별·산업별 노조가 지속적으로 결성되고 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도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을 보면, 한결 변화된 세상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교육자를 노동자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각차가 존재합니다. 교육자의 ‘숭고한’ 교육을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차이인데요, 어쩌면 노동과 노동자의 개념을 육체적 활동에 제한하여 ‘신체적인 막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는 편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동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라고 할 수 있고 노동조합 결성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고등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전문직 종사자’로 볼 것인지, ‘교육과 연구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그에 맞는 급료를 받는 노동자’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견해차가 존재합니다. 후자의 입장에서 결성된 ‘전국대학교수노동조합’은 창립 20년만인 2021년에야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았습니다. 가끔 “교수님들도 노조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 표정에는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대학교수와 노동조합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의아함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 내에는 다양한 트랙의 교수들이 존재합니다.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처럼 대학에 소속되어있는 교수들은 전임교원이라 하며, 그렇지 않은 교원들은 비전임교원(강사가 대표적입니다)이라고 합니다. 전임교원은 다시 정년트랙 교수와 비정년트랙 교수로 나눠지는데, 정년트랙 교수는 승진과 정년이 보장되어있는 반면, 비정년트랙 교수는 재계약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승진도 제한됩니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트랙 간 임금과 대우는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통계로 보는 현실은 더 암담해서, 비정년트랙 교수의 초봉은 대개 3,000만원 초반대인데 이는 동일한 경력과 조건을 가진 정년트랙 교원 임금의 절반 수준이며, 4인 가족 세전 최저 생계비보다 겨우 100만~200만원 정도 높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비정년트랙 교수의 평균 연봉은 3,000만원 후반대로, 이 역시 동일 조건의 정년트랙 교수 임금의 절반 수준이면서 근무 연수가 길어질수록 두 트랙 간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집니다. 사정이 이러니 비정년트랙 교수는 ‘대학교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값싸고 유연한 교육 노동 제공자’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합니다. 게다가 학내 활동과 의사기구 참여에도 배제되는 경우가 많아 교원으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나마 이런 문제조차 제기할 수 있는 조직도 갖지 못한 현실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가장 큰 목표가 노동조건 개선인 것처럼 교수노조의 활동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은 재정 여건을 이유로, 또는 주류 구성원의 무관심으로 비정년트랙 교수에 대한 구조화된 차별을 해결하는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빌미로 차별과 배제가 당연시되는 대학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와 공정, 공공성과 균형발전을 외치는 것은 어쩌면 위선이자 공허한 외침입니다.
노동자로서든 전문직으로서든, 대학의 모든 교수자들이 교육과 연구의 능동적 주체자로서 존중받고, 안정적인 고용 속에서 가르치는 즐거움과 연구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