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 싸워라, 계속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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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정치부 기자

봤다, 들었다, 오늘도 다툼을.

한 달 남짓 국회를 출입하면서 남은 인상을 꼽으라면 새삼스럽게도 ‘싸움’이다. 입장을 밝히면 다른 누군가 반박하고 규탄하는 모양새는 흔하디 흔했다. 여당과 야당은 팔팔 끓는 물과 기름같았다. 개원부터 국회 상임위원장직 배분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채상병 특검법’을 놓고도 맞붙고 있다.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고성이 오갔고,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국회 개원식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같은 당 소속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누가 보낸 문자를 누가 무시했다는 내용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다툼을 나쁘다고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치는 싸움이다. 권력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다. 싸움 끝에 공인된 힘을 가진 자가 이끄는 대로, 사회 질서가 만들어진다. 싸워야 하고, 싸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거기다가 ‘나’와 상관 없는 싸움 구경은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최근엔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선임을 놓고 여야가 맞붙었다. 민주당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라고 말하자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법 공부는 제가 더 잘하지 않았겠냐”고 설전을 벌여 화제가 됐다. 강원도에서는 누가 누구와 싸워서 셔츠 자락이 찢어질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드러나지 않는 싸움도 많다. 누구와 ‘친하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 물밑에서 오가는 기싸움도 미묘하다.

그런데, 정치를 한다면서 진흙탕 싸움만 하다가 끝날텐가.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싸움을 부추기기만 할텐가. 국회에서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 상대를 향한 각을 더 뾰족하게 세우고 더 거친 발언을 하는 사이 인간다운 삶을 기대하는 누군가의 속은 썩어가고 있다. 지난 5월 막을 내린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 법안만 1만6,379건이었다. 여야가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첨예한 대립을 계속하면서 민생과 직결되는 대다수 법안은 그대로 사라졌다.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책임지는 일명 ‘도현이 법’, 지역사회에서도 기대가 컸던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 재난방송 시 수어를 제공토록 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 등도 폐기됐다. 물론 여야가 다투기만 하는 건 아니다. 현재 강원 여야 의원들은 지역 활력을 위해 필요한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을 공동으로 발의할 준비중이다.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과 도 경제부지사를 지낸 민주당 맹성규 의원은 은퇴자도시 연구포럼을 통해 고령화 정책 마련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럼에도 주민들의 삶과는 의미 없는 ‘치고 받음’이 이어질까 걱정이다. 우리는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에게 나와 우리, 지역과 한국을 더 잘 살게 해달라고 권한을 줬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싸움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한 것인지 돌아봐 달라고 말하고 싶다. 씁쓸한 웃음을 주는 싸움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 끝에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도록 하는 속 시원한 싸움을 보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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