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1월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정부는 1997년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로 인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고, IMF는 지원의 조건으로 경제체질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많은 기업이 도산하였고, 실업자가 늘어났다.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가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는, 다른 반 친구는 부모님의 빚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우리는 그때의 유난스러운 추위를 ‘IMF 한파’라고 불렀다.
빚이란 자본주의에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이 증가해야 한다. 생산력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는 그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소비자의 구매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빚이다. 할부와 대출 없이 자동차와 주택을 현금으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빚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다.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빚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외환위기의 경험을 통해 빚을 제대로 정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고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2004년 3월 2일 개인채무자회생법이 제정되었으며, 2004년 9월 23일에 개인회생절차가 시행되었다.
개인이 빚을 사법시스템을 통해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회생절차와 개인파산절차이다. 회생절차는 개인회생절차와 일반회생절차가 있고, 개인회생절차는 일정한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채무자의 총 채무액이 일정한 규모 이하(무담보채무 10억 원, 담보채무 15억 원 이하)인 경우 채무자가 일정기간 동안 소득에서 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 면책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일반회생절차는 개인회생절차를 이용할 수 없는 채무자가 채무가 조정된 회생계획안을 마련하고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 회생계획안을 수행하게 하는 제도이다. 개인파산절차는 개인인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인 경우 채무자 또는 채권자의 신청으로 채무자에게 파산이 선고되고, 파산채권의 확정 및 파산재단의 환가절차 후 배당이 이루어지고 나면 채무자가 면책 및 복권되는 제도이다.
조선시대에도 오늘 날의 파산과 같은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판셈’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빚진 사람이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자기 재산의 전부를 내놓아 나누어 가지도록 하다’는 것이다. 채무자가 판셈으로 모든 재산을 내놓고 나면 채권자들은 그 재산을 나누어가지고 더 이상 남은 빚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채무자와 그 가족이 3년의 노역기간을 채우면 남은 채무를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빚을 일부만 갚게 하고 나머지는 면책해 주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빚이 생기게 된 것은 불운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 누구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대유행을 예측하지 못했고, 예측할 수도 없었다. 경기(景氣)는 호황과 불황을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고 불황의 시기엔 누군가는 직장에서 퇴직해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사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았지만 불운한 상황으로 인해 빚더미에 앉은 채무자를 구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