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어섰다가/ 용건을 까먹어서/ 다시 앉는다」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 「 생일 케이크/ 촛불 불고 나니/ 눈앞이 캄캄」 「요전에 말이야/ 이렇게 운을 뗀/ 오십 년 전 이야기」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이 나이 쯤이면 /재채기 한번에도/ 목숨을 건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책 속 내용입니다. 일상에서 겪게 되는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표현해 놓았는데요, 짧은 글 속에 넘치는 유머와 여유 속에서 ‘늙음’에 대한 이해가 한층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오랜 세월 당연히 받아 들여온 ‘노화’와 ‘늙음’이지만 이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대처 방식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첨단 기술과 의료기술의 발달은 젊음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장수에 대한 열망을 더욱 키우고 있지요. 하지만 ‘장수가 축복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에게는 건강과 경제적 문제가 뒷받침돼야 하고 국가로서는 고령화 사회로의 변화에 따른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비하지 못한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는 불안과 걱정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올봄에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영화는 75세 이상 노인의 안락사를 국가가 권장한다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건강하지만 ‘직업(생산성)’을 잃은 주인공 노인이 <플랜 75>로 내몰리게 되는 현실의 담담함도 무겁게 다가왔지만, 무엇보다 늘어나는 노령인구 부양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만과 노인 혐오가 이런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한 정책의 실행 배경이었다는 점이 충격이었습니다.
비록 영화 속이기는 하지만, ‘생산성’ 유무가 노인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을 때 불러올 수 있는 초고령화 사회의 가장 비극적인 단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개인이 축적한 부에 따라 어떤 이들은 첨단 의학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장수를 즐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의 노인들은 노화와 질병, 경제적 곤궁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잃은 ‘무용한 계급’이라는 사회적 낙인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인 계층을 바라보는 사회공동체의 시각이 정책의 방향과 집행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최근 유명 국책연구원은 우리나라 인구 문제의 핵심을 ‘생산인구 비중 감소’로 보고 이에 대한 방안의 하나로 고령자의 ‘은퇴 이민’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생산인구를 늘릴 묘책이 없으니 반대로 피부양자(비생산 인구)를 줄여 청년의 부양 부담을 줄이자는 대책인데, 불온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생산인구 감소’와 ‘국가 경쟁력 하락’이라는 관점에서 초고령화 사회 대응책을 준비하는 정부와 여러 기관의 명확한 한계점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의 접근이라면 한국판 <플랜 75>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지나친 과민 반응일까요?
초고령화 사회는 우리 모두가 준비해야 할 당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 존엄이라는 가치와 세대 간 상호 존중과 공감이 우선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산성’의 관점에서만 국민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과 ‘행복 추구권’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이 선행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