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속이 빈 ‘깡통’

경제부 이규호 기자

‘깡통’이란 의미는 그리 좋게 쓰이지 않는다. 비어있다는 의미로 상용되며, 아는 것이 없이 머리가 텅 빈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식이 깡통이다’, ‘빈 깡통이 요란스럽다’, ‘깡통 찼다’는 말들이 그렇다.

‘깡통’이란 말은 부동산이나 금융시장에서도 쓰인다. ‘깡통전세’가 대표적이며, ‘깡통주택’, ‘깡통대출’, ‘깡통주식’까지 다양한데, 이 단어들은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거나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일 때 주로 쓰이기도 한다.

최근 부동산 매매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동시에 전세가격 상승 영향으로 깡통전세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깡통 전세는 주택가격 대비 전세보증금이 과도하게 높은 것을 의미하는데,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금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80% 이상의 경우 등이 해당된다. 한국부동산원이 부동산테크를 통해 공개한 ‘임대차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올해 1~4월 강원지역 아파트 전세가율은 79.5%로 집계됐다. 1억원짜리 아파트 전세가격이 7,950만원 이라는 뜻이다. 특히 춘천과 원주, 강릉은 이미 80%를 넘겼다. 연립·다세대주택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1년간 원주지역의 연립·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은 92.3%로 나타났다. 강릉의 올해 1~4월 연립·다세대 전세가율도 90%를 넘겼다. 전세가율이 100%가 넘으면, 전세보증금보다 매매가격이 싸진다. 주택을 팔아도 대출금과 전세금을 회수하지 못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속이 비어버린 ‘깡통주택’으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줄 수 없게 되고,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떼이는 ‘전세 사기’가 발생할 우려가 커진다. 실제 정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총 1만7,000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전세사기의 경우 앞으로도 피해자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큰데, 정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22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가운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놓고, 벌써부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핵심은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인데, 여·야가 대립하는 사이 빚을 떠안아야 하는 피해자들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금리와 고물가 장기화로 금융권에서는 돈을 빌린 사업자 등이 이자도 못 갚는 ‘깡통 대출’ 문제도 커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농협)의 지난해 말 기준 무수익여신은 총 3조5,207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사이 7,307억원(26.2%) 불어났다. 무수익여신은 이자를 제때 못 갚고 원금 상환도 어려워 보이는 부실채권이다. 이같은 상황 또한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 큰 것도 문제다. 미국의 금리인하 시기가 늦춰졌고, 환율 상승으로 공사비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는 공사비 증액을 둘러싸고,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으로 공사가 멈춘 곳도 있다. 실제 은행 및 금융권의 지점장들은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면 새로고침 되는 무수익여신 비율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앞서 ‘깡통’은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거나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고도 했다. 깡통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금전적, 정신적 고통을 준다. 깡통대출은 건설·부동산업뿐 아니라 은행의 재무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깡통’ 문제는 대한민국 전반을 요란스럽게 흔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 정부와 국회, 산업계와 학계가 장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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