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단상]박건호와 박인희, 그리고 모닥불

한필수 전 원주MBC 보도부장

가수 박인희가 솔로로 전향하면서 발표한 노래는 ‘모닥불’이었다. 1972년에 내놓은 모닥불은 시인 박건호가 노랫말을 쓰고 박인희가 곡을 붙인 명곡으로 박건호가 유명 작사가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박인희가 정상의 가수가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사실 박건호는 원래 시인이었다. 그만의 독특한 서정적인 노랫말과 박인희의 포크 계열의 곡이 어우러져 대박을 치기에 이른다.

너 나 할 것 없이 형편이 어려웠기에 바다로 피서를 간다는 것이 사치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수도권에서 찾는 장소라고 한들 기껏해야 춘천의 강촌이었고, 원주의 간현이었다. 경춘선을 타고 강촌역에서 내려 북한강에서 캠핑을 펼치는 것 아니면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를 타고 간현역에서 내려 섬강의 모래사장에 발을 디뎌 보는 것이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과분한 피서였고 최고의 낭만이었다. 젊은이의 캠핑이든, 대학 시절의 MT마당이든 ‘모닥불’이란 노래는 꼭 불러야 했다.

1981년 어느 여름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진행하던 ‘FM98.9’라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박건호가 출연했었다. 당시 그는 ‘모닥불’ 노랫말에 대해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그가 고교시절에 시내버스를 타고 간현으로 친구들과 캠핑을 떠났었단다.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우고 밤이 지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슥한 새벽이 돼서야 불이 꺼지더란다. 습관처럼 얼른 메모를 하게 되었고 훗날 다시 정리해 만든 시가 오늘날 박인희의 ‘모닥불’이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를 맞으면서 우리나라의 가요계는 지금까지 유행가로 상징되던 가요사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기존의 대중가요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포크송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등장한다. 박인희를 비롯한 은희 등의 가수들이 그들로서, ‘모닥불’은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1972년에 발표한 ‘모닥불’이란 노래는 음유시인이던 박건호의 노랫말과 박인희의 포크송 계열의 음악이 어우러지며 단박에 정상의 자리를 꿰차기에 이른다. 박인희는 가수이자 시인이며 작곡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를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그가 진행하던 동아방송의 3시의 다이얼은 음악방송 진행자로서의 재능도 평가를 받았으니 만능 엔터테인먼트였었다.

박수 칠 때 떠난다고, 가수이자 방송인으로서 정상을 구가하던 그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다. 한국 포크계의 전설인 가수 박인희가 돌아왔다. 올 6월14일 서울 연세대에서 ‘박인희콘서트’를 연다. 필자도 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볼 작정이다. 박건호씨가 노랫말을 지은 ‘모닥불’도 들을 수 있으리라. 언제 들어도 명곡이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건호씨를 추억할 것이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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