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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홍이현숙의 예술 세계…“나는 한없이 삐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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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박수근미술상 수상 작가

제9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한 홍이현숙 작가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세희기자

“그저 한없이 삐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속하기보단 바깥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화실에서 2024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 홍이현숙 작가를 만났다. 일반적으로 봐왔던 화실과는 달리 그의 화실에는 물감이나 팔레트가 아닌 흰 벽과 컴퓨터 그리고 망치, 도끼 등 미술에서는 쉽게 쓰이지 않을 법한 공구들이 다였다. 캔버스 위 작품이 아닌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작품 활동을 하는 그의 화실은 ‘홍이현숙’ 자체를 응축시켜 놓은 듯했다.

“저는 거칠고, 무모한 사람이에요. 오랫동안 활동을 했지만 그림을 남긴 것도 아니죠. 그런 제가 박수근 미술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상과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어떤 분께서 받는 사람이 그 상을 결정하는 거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좋은 작가가 많을수록 그 상의 권위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더 좋은 활동을 하라고 주신 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다고 했어요.”

홍이현숙 작가는 "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유머'"라며 재미있는 예술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시선을 바꾸는 등 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사진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가의 모습. 신세희기자

막힘 없는 그의 답변에서 또 한 번 그와 그의 작품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그의 작품 ‘석광사 근방’은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사라질 공동의 터전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는 그곳에서 길고양이가 돼 담을 넘거나 혹은 그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무모했다.

“뻔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쉽지는 않죠. 하지만 작은 것부터 시선을 바꿔보는 거죠. 예를 들어 집에서 화실까지 오갈 때 버스를 타지 않고 달려서 온다거나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해요. 새롭게 사는 거죠. 예전에 정자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이 부족해 사러 가는 과정에서 걷지 않고, 돌과 돌 사이를 뛰어서 내려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뭔가 그 돌이 하나의 봉우리처럼 느껴졌어요.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저는 제가 정말로 날았다고 생각해요.”

홍이현숙 작가는 "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유머'"라며 재미있는 예술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시선을 바꾸는 등 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사진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가의 모습. 신세희기자

결국 그는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담기 위해 실제 축지법을 공부하기까지 했다. 몇 번이고 지붕과 지붕 위를 넘나들던 탓에 무릎 연골이 닳고 닳아 시술까지 하게 됐으나 그의 비행은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학살을 중단하라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도전적이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세상을 향한 삐짐 덕분’이라 설명했다. 이른바 삐짐 정신이다.

“예술의 기본은 유머라고 생각해요. 근데 유머는 약간 떨어져서 봐야 보인다고 생각해요.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게 말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죠.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일상이 됐어요. 생각해보면 재미나기 위해서는 어떤 틀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가 나는 상황 속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탈피하면 조금 더 유쾌하게 그 상황을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사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냥 기존의 상황에서 삐지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죠.”

홍이현숙 작가는 "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유머'"라며 재미있는 예술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시선을 바꾸는 등 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사진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가의 모습. 신세희기자

삐짐의 역사는 꽤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했을 당시 미술판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주류에 끼지 못한 그는 조각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국립극장에서 설치 일을 시작했다. 이후 자연스레 설치 작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던 그는 조각이 아닌 서사를 다루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그의 모습은 당시 많은 여성들에게 본보기가 됐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 앞에는 한국 여성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여성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는 저한테 너무 과분하죠. 그냥 처한 현실이 여성 불평등의 구조였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저 밖에 나와서 관조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죠. 굳이 여성주의를 표현하려고 애쓰지는 않았어요. 여성주의보다는 더 바깥에 있는 사람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동물도 한 종류죠. 막연하게 동물과 인간이 전쟁을 치른다면 어느 편에 서야 할까를 생각해봤을 때, 기꺼이 동물 편에 서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제 생각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제9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한 홍이현숙 작가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세희기자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남다른 고집이 있었다.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마치 그에게는 한계가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실제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폐경에도 당황하기보다는 드러내기를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폐경을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그는 ‘나의 몸이 폐경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폐경은 어떠신지요?’라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신촌역에 내걸어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게다가 친구들과 동네 목욕탕을 빌려 폐경 파티를 열기까지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작업 세계가 과연 무궁무진하기만 했을까. 그에게 작품 활동을 하며 변곡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지난 여름에 갔던 동학수련 이후에 생각하는 걸 바꾼 거 같아요. 거기에 다녀온 뒤 지금의 저는 젊었을 때보다 확실히 순화됐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한테는 정말 큰 깨달음이었죠. 점점 저는 포함되지 않은 곳에 있다가 어느 순간 포함되면서 뭔가 다듬어지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때 느꼈죠. 아직 그리고 여전히 조금 더 무모해져도 되는 나이라고요. 그래서 설치작업과 영상작업 모두 더 거칠어져야겠다, 더 바깥에 서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홍이현숙 작가는 "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유머'"라며 재미있는 예술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시선을 바꾸는 등 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사진은 인터뷰 사진 촬영 직전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 신세희기자

앞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거칠고 무모한 도전을 반복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테다. 인간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어쩌면 인간으로서 살기보다는 자연 일부로서 산다는 뜻과 가깝게 들린다. 그런 그에게 1년 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양구에서 펼칠 박수근 미술상 수상 작가 전시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단오를 맞아 강릉에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강원도는 참 지역적 특색이 정말 잘 보존돼 있는 곳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양구가 가진 매력은 무엇일지 기대가 돼요. 내년에 있을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박수근의 미술 세계와 함께 양구에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고민하고, 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생각이에요.”


홍이현숙 작가

△1958년 문경 生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조각전공) 학사·석사 졸업

△‘폐경기를 위한 의식’, ‘은닉된 에너지’ 등 개인전 22회·단체전 다수 참여

△공공미술 프로젝트, 전시기획, 연출 등 다양한 분야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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