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사람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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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기 강릉주재 국장

“인불가이무치 무치지치 무치의(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

“사람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운 마음이 없다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면 부끄러워 할 일이 없다.”

‘맹자’에 실려 있는 말이다. 부끄러울 ‘치(恥)’는 귀 이(耳)와 마음 심(心) 이 합쳐진 글자다. 부끄러운 마음은 귀를 기울여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내 마음이 부끄럽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뒤 사건은폐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33)씨가 지난 24일 구속됐다. 9일 사고를 낸 후 보름만이다. 서울중앙지법 신영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김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인도피 교사 등 혐의로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씨의 소속사 대표와 본부장도 구속됐다. 소속사 대표와 본부장은 김씨의 매니저에게 거짓 자수를 지시하고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없앤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이날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신 판사는 김씨에게 “똑같은 사람인데 김씨는 처벌받으면 안 되고, 힘없는 사회 초년생인 막내 직원은 처벌받아도 괜찮은 것이냐”는 취지로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가 사고 직후 20대 초반인 소속사 직원에게 전화해 경찰에 대신 출석해 달라고 요구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구속 전 심문에서 판사가 피의자를 꾸짖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이 직원은 “겁이 난다”며 김씨의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씨의 다른 매니저가 김씨의 옷을 입고 경찰에 대리 출석해 거짓 자백을 했다. 검찰은 이날 심문에 참석해 단순한 음주운전을 넘어서 도주·은폐 시도 혐의가 중대하고, 추가 증거 인멸이나 도주를 할 우려가 있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만일 김씨가 사고를 낸 뒤 달아나지 않았거나 달아난 직후에라도 자수했다면 구속영장까지 청구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중대한 인명피해가 없는 음주 뺑소니 사건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와 재판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김씨 측이 조직적, 반복적으로 증거를 없애고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게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된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김씨는 지난 19일 음주운전을 시인하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으나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다가 영장을 통해 압수되자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경찰수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

지난 해 12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 동행 이후 공개 일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건희 여사가 지난 16일 윤 대통령과 함께 캄보디아 정상 부부 방한 일정에 참석했다. 이후 윤 대통령과 19일 불교행사에 동행했고, 21일엔 혼자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 행사에 참석하며 단독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품백 수수 논란으로 잠행을 이어 오다 반년만에 모습을 드러내고도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이렇다 할 사과 한마디가 없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리고 있다”고는 했다.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시발점으로 지목되는 ‘VIP 격노설’의 실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핵심 피의자들이 격노설의 존재를 극구 부인해 ‘진실 공방’ 단계에 머물렀는데, 진술과 물적 증거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채상병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보며 우리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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