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의 일출이 대단하면 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숙취가 가시지 않는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결국 나는 이불 밖으로 손만 내밀어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일행들이 차량을 이용해 포카라(822m) 인근 사랑콧(1,600m)이란 산봉우리로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난 뒤에야 비로소 익숙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새해 첫날 일출도 매번 비슷한 이유를 대고 이불 속에서 뒹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곳은 히말라야의 일출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무거운 몸을 침낭과 이불 속에서 가까스로 꺼낸 뒤 생수 한 병을 들고 궁여지책으로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탱크의 철재 기둥 사이로 히말라야의 오른편을 물들이며 해가 뜨고 있었다. 옥상에는 초로의 일본인 사내 둘이서 자리를 깔아놓고 떠오르는 붉은 해와 오렌지처럼 물드는 설산의 봉우리를 향해 절을 올리는 중이었다. 절을 올리고 있다니! 그들은 정성을 다해 절을 한 뒤 옆에 놓인 나무파이프를 입으로 가져가 연기를 빨아들이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티베트의 수도자들이 눈보라 치는 설산을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며 넘어가는 것처럼 진지했다. 저 멀리 동북쪽엔 다울라기리(8,167m), 안나푸르나(8,091m), 마차푸차레(6,997m), 마나슬루(8,163m)가 아직 하루의 첫 햇살을 받지 못한 검은 산들 너머에서 신들처럼 얼굴을 드러내고...... 나는 쑥이 타는 듯한 냄새가 잔잔하게 물결치는 옥상에서 비단잉어의 꼬리처럼 변해가는 마차푸차레를 오래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마차푸차레는 다른 산들보다 높이는 다소 낮지만 자태 면에선 단연 압도적이었다.
포카라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로 트레킹을 떠나거나 돌아온 여행자들이 머무르는 휴양도시다. 페와 호수에서 배를 타면 호수에 담긴 마차푸차레와 사랑콧 너머 하늘 아래로 솟아오른 마차푸차레를 동시에 즐길 수가 있다. 여행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지인들도 카트만두와 달리 그리 바빠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천천히 취해간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경적도 타멜 거리에 비하면 거의 들리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첫 번째 방문 때 일출을 보지 못하고 다음 날 오후 사랑콧 전망대 근처에서 행글라이더를 탔는데 유럽인 조종사 녀석이 360도 회전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허공에다 전날 마신 술을 모두 토할 뻔했다. 두 번째 방문 땐 겨울임에도 하루 종일 비가 쏟아져 예정된 일정을 포기하고 하루 종일 술에 취하기도 했다. 인생의 어느 며칠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곳이 포카라다.
하지만 사랑콧에서의 일출을 다시 놓칠 수는 없었다. 지난번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시바신을 필두로 이름을 아는 네팔의 모든 신께 당부를 드린 덕분에 두 번째, 세 번째 방문 땐 새벽에 일어나 차량을 이용해 어둠을 뚫고 사랑콧(sarankot)에 오를 수 있었다. 네팔의 아침 해는 바다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전망대에서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데우다 보면 히말라야의 아래쪽이 봉숭아 꽃잎처럼 물들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서성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그 가느다란 분홍을 쫓아 모여들었다. 산 아래 포카라의 불빛은 짙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없으면 포카라의 불빛들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분홍빛은 점점 넓게 퍼지고 의심과 기대가 엇갈리는 시간 속에서도 어둠 속의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관령의 아침 해는 벌써 네 시간 전에 떠올랐겠구나. 그 해가 서해를 건너고 부지런히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이제 히말라야를 넘으려고 하는 구나. 그 해를 보겠다고 이렇게 낯선 나라의 산꼭대기까지 옷이란 옷은 다 걸쳐 입은 채 올라와 추위에 벌벌 떨고 있구나. 뭐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의 탄성이 봉숭아꽃처럼 하나둘 피어났다.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차례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같은 꽃이 피어났다. 산 아래 포카라는 짙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구름 위에서 설산을 넘어오는 해를 관람했다. 내 옆에서 누군가 싱잉볼(Singing bowl)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페와 호수로 떨어진 눈송이가 쉬지 않고 동심원을 그리는 것처럼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아니, 첫 햇살을 따스하게 데우는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사랑콧 전망대는 떠오르는 해를 안내하는 등대 같았다. 분홍의 설산들은 꼭대기부터 노랗게 변하더니 이윽고 순백의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싱잉볼을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메일주소를 물었다. 그녀는 포르투갈에서 온 여행자였다. 그녀가 작은 종이에 곱은 손으로 주소를 적어주는 동안 시바의 화신인 칼리신처럼 무섭게 생긴 검은 개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내 종아리를 지그시 물었다. 아팠지만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해를 찾아 산에 올라온 기쁨이 내 얼굴에 가득했다.
싱잉볼 연주의 동심원 안에서 맴을 돌며 나는 산을 내려왔다. 해가 떴으니 이제 네팔의 깊은 산속으로 절뚝거리며(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무 한 그루를 찾아서.
편집=이화준기자
어둠 속에서 알람이 울렸다. 알람은 한 번 울리고 멈추지 않았다. 두꺼운 이불 속, 게다가 침낭 속에 머리까지 파묻고 있었지만 집요한 알람소리를 피해 도망갈 방법은 없었다. 옆 침대에서 먼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간밤 마신 술 때문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억지로 가동시켜 생각을 다듬었다. 일어날 것인가, 계속 잠을 청할 것인가. 해는 왜 이렇게 애매한 시간에 뜨는 걸까. 매일 뜨는 같은 해를 꼭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