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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100세 시대의 고민’

영국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오래된 인도의 낡은 호텔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2012년 개봉한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은퇴한 가정부 뮤리엘은 적은 비용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단 한 가지 조건 때문에, 통장 잔고 제로인 더글라스는 아내 진과 저렴하면서도 안락한 노후를 만끽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된 에블린 역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자 과감히 인도행을 택했다. ▼행복한 노후는 이제 영화 속 얘기로만 여길 수 없다. 최근 발간된 ‘2023 KB골든라이프 보고서’에서 은퇴 후 필요한 적정생활비는 가구당 월 369만원으로 조사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8년에 비해 최소생활비는 76만원, 적정생활비는 106만원 늘었다. 더 심각한 점은 실제 준비할 수 있는 금액은 212만원으로 최소생활비 251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과반을 넘는 52.5%에 달했다. 자식 뒷바라지에 정작 자신의 노후는 준비하지 못한 이가 대부분이다. ▼100세 시대의 그늘이 짙다. 이번 보고서에서 노후 대비 경제적 준비 상황에서 아직 은퇴하지 않은 가구의 희망 은퇴 나이는 평균 65세였다. 하지만 실제 은퇴하는 나이는 이보다 10년 이상 빠른 평균 55세였다. 살아온 세월만큼 경제적 궁핍 속에 늙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공포감을 불러온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면 누구나 품위 있는 노후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자식에게 기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빈곤, 질병, 고독의 무게는 세월이 갈수록 더 버거워질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늙는다는 것이 천형(天刑)이 될 판이다. ▼노인이 가난한 나라에서 노인이 행복한 나라로 가는 길을 우리 모두 고민할 때다. 1884년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이 땅을 밟은 호러스 알렌은 경로 효친의 전통에 감탄하며 ‘조선은 노인들의 천국’이라 표현했다. 대한민국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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