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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화천 풍익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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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풍익홈의 연원은 6·25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직후 수복지구인 화천에 주둔하던 8사단 포병연대가 전쟁 고아 20여명을 보호하기 위해 부대 앞 풍익홈의 현 주소지에 군용 천막을 세웠다. 부대 철수를 검토하던 포병연대 연대장은 당시 20대의 곽종옥(2019년 향년 92세 소천) 군종 참모에게 아이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는 이사장으로 평생 ‘전쟁 고아의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다. ▼원명인 ‘풍익’은 6·25전쟁 때 전사한 고(故) 김풍익 중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김 중령은 아군의 화력으로 적의 전차를 저지하는 게 불가능한 것을 알았지만 고심 끝에 최후 수단으로 105㎜ 야포를 직접 조준, 정면 대결하며 적 전차를 파괴하다 부대원들과 함께 전사했다. 이 전과로 서울로 진격하는 적의 공격을 지연시켜 수많은 시민의 생명을 구했다. 이런 고인의 무훈을 기념하고 명복을 비는 일념에서 ‘풍익’이라는 이름의 복지재단이 시작됐다. ▼풍익홈은 지금까지 한결같이 가족으로부터 외면받은 아이들을 품어 왔다. 주변 군부대를 비롯해 후원자와 봉사자, 지역의 관심과 사랑으로 고아 이외에도 결손가정 아동들을 건강한 사회의 일꾼으로 키우는 데 전심전력했다. 노인, 여성,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해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간 ‘풍익 고아원’은 ‘풍익홈’이 됐으며 천막은 건물이 되고 1,100명이 넘는 아이가 이곳을 거쳐 갔다. 자립해 사회로 나간 원생 중에 70대가 된 노인도 상당수다. ▼풍익홈이 내년에 개원 70주년을 맞는다. 얼마 전 ‘나눔 숲 정원’ 완공을 기념해 오픈하우스를 진행했으며 주민들을 초청해 프리마켓, 아동청소년 아나바다 장터, 열린음악회 등 행사를 갖기도 했다. 내부 시설도 업그레이드됐다. 커뮤니티실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을 대여받아 전시행사도 열었다. 지금은 낭천서예회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풍익홈이 고아들의 보금자리에서 복지, 문화로 주민들이 하나 되는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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