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과학고' '한국산림과학고' 한국항공고'...
강원지역 직업계고가 변신에 나섰다. 학과 개편 등 대대적인 재구조화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현장에서는 위기감이 돈다.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강원일보는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과 공동으로 '2023 교육선진국 실현을 위한 국제학술행사'를 기획하고, 강원 직업계고의 미래와 발전 방향을 주제로 직업교육의 본고장인 독일을 찾아 해결책을 모색했다.
■만 10세부터 진로 탐색…학문·직업 선택 유연한 제도=독일에서는 만10세가 되면 진로 탐색에 들어간다. 만6세에 4학년제인 초등학교에 입학해 이를 마치면 자신이 장래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성적에 따라 상급학교 진학을 결정하지만 통상 담임교사가 학생 진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며 다수의 학생 및 학부모가 이를 수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중학교 자유학년제 또는 자유학기제를 통한 진로 탐색 기회가 주어지지만 독일에 비하면 그 시기나 질적 측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반면 독일의 진로 시스템은 다소 노골적이다. 어느 학교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직업군이 사실상 정해진다. 초등학교 졸업후 진학할 수 있는 상급학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대학진학을 위한 김나지움(9년과정, 실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레알슐레(6년과정), 직업교육을 하는 하우프트슐레(5년과정) 등이다. 최근에는이 세 학교의 특성을 모두 반영한 게쟘트슐레라는 학교도 등장했지만 아직은 일부 주에만 도입돼 있다.
레알슐레를 졸업하면 공무원이나 은행원, 경찰, 비서 등 사무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일종의 증서를 받게된다. 하우프트슐레 졸업생 역시 생산 등 관련 직업을 배우기 위한 학력을 소지하고 있다고 인정받는다.
다만 해당 학교를 선택했다고 해서 진로를 변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레알슐레를 졸업하고 김나지움에 편입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하우스프슐레 학생이 레알슐레로 건너갈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열려 있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는 대신 취업까지 여러번 선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다.
헤센주 교육청 산하 기술혁신교육사무소에서 일하는 마사엘 퀴머씨는 "단계별로 진로를 바꿀 수 있도록 교육제도가 설계돼 있다"며 "비교적 어린 나이에 진로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해 둔 것"이라고 했다.

■ '아우스빌둥' 교육부터 채용까지…독일 학생의 80%가 이원식 교육=학생들이 만 16~17세가 되면 대부분의 레알슐레 및 하우프트슐레 졸업생들은직업전문학교 진학과 동시에 '아우스빌둥' 혜택을 받게 된다. '아우스빌둥'은 이론과 실습을 겸한 독일의 이원식 직업교육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직업계고에서 이론과 실습을 함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독일에서는 필수 학문과 이론은 학교에서, 실습 및 관련 교육은 기업으로 가 배우는 시스템이다.
학생이 먼저 스스로 기업에 이력서를 낸 후 기업이 이를 심사해 교육생을 선발하고, 노동청과 상공회의소 등이 학생들의 지원을 돕는다.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루프스콜레 더 스타트 보트로프 학교도 이같은 이원식 교육을 하는 학교 가운데 하나다. 기업·학생별로 다르지만 주 1~2일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3~4일은 학생이 합격한 기업 현장에서 기술 훈련을 받는다.
구이도 테베스 교장은 "기업은 기업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한다고 보면 된다"며 "이같은 직업 교육 및 훈련에는 3년에서 3년6개월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 학교와 기업의 협업이 핵심=독일의 이원식 교육제도의 핵심은 학교와 기업의 긴밀한 협업이다. 구이도 교장은 "매월 1회 정도씩 학교 관계자와 기업 관계자가 만나 학생에 대해 논의를 한다"며 "학교에서 시험이 있는 기간엔 기업에 문의를 해서 일을 줄여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기업에 일이 많을 때는 학교에 양해를 구해서 일하는 시간을 늘리도록 한다"고 했다.
아우스빌둥에 참여하는 기업은 모두 지역 상공회의소의 허가를 받은 기업들이다. 학교보다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한다. 기업에서 기술 훈련 중 일어난 모든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은 기업이 짊어진다. 제대로 된 처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상공회의소가 기업을 문 닫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패널티를 부여한다. 학생에게는 최저 임금 이상의 급여가 지급되는데 이 역시 기업이 모두 부담한다.
루프스콜레 더 스타트 보트로프 학교가 있는 노르드라인 베스트팔렌주 상공회의소는 관할지역에 150여개 기업과 협업하고 있으며 매년 300여개의 기업으로부터 협업 요청을 받고 있다.

학교는 사회인으로 갖춰야할 기본 소양 교육을 한다. 주로 독일어와 영어, 종교, 체육 등 기업 현장과 무관한 과목들이다. 필요한 전문 기술은 기업에서 배우고, 학교에서는 최소한의 기초 학문을 교육하는 셈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학교와 기업에서 이원식 교육을 받은 학생의 70% 가량이 교육을 받은 기업에 그대로 취업한다. 기업이 미래에 함께 일할 '예비 교육생'에게 투자하고, 학생은 기업에 필요한 인력으로 성장해 취업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독일사회가 학생을 '미성년'이 아니라 '미래의 직업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이도 교장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인재를 미리 데려와 기업에 맞는 훈련을 시키는 작업"이라며 "각 기업마다 요구하는 기술이 다르고, 이런 기업은 대학을 나와 이론만 아는 학생들보다는 실습을 병행하는 학생들이 더 전문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당연한 인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