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한 바람소리와 함께 흐드러진 갈대를 보면 영락없이 무르익은 가을이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시에는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명문장이 있다. 필자가 소싯적 이 문구를 접했을 때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서민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인플레이션과 함께 찾아온 고금리로 가계대출자 서민은 대출금 변제의 부담감과 고통으로 거대하지만 조용히 울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채무자의 울음에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채무를 변제하여야 한다는 것은 비단 법적 의무에 한하지 않는다.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고, 비양심적인 짓이며, 그러한 채무자에게 무능력·불성실이라는 낙인을 찍어 마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사기도 하며, 낭비를 하여 자기 운명을 불행하게 만들었으니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의견도 더해진다. 어찌됐든, 원리금을 갚지 못 한 사람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와 달리기 경주를 시작한 채무자가 아무리 성실히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더라도, 그것은 요새 시쳇말로 ‘알빠노(남이 어떤 상황이던 내 알 바 아니다)’, ‘누칼협(그 상황에 처하도록 누가 칼로 협박했느냐)’일 뿐이다. 갚음이 원칙이다. 채무자 역시 원칙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리 내어 엉엉 울지 못한다. 채무자는 조용히 인내하며 울고 있고, 살고 있다. 냉혹한 거시경제의 방향은 즉각적으로 법원에도 그 영향을 주었다. 조용히 울다 못해 전국적으로 개인파산, 개인회생을 신청하러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채무자가 우후죽순처럼 급증했다(물론, 사기·허위 파산을 도모하는 후안무치한 채무자도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파산 법정은 차갑고, 음습한 기운이 흐른다. 사회초년생부터 말년을 바라보는 노인까지 채무자 모두 파산 법정에 서기까지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듯 법정 안에서 회한 가득한 한숨을 연신 뿜어낸다. 채권자가 법정에 출석하여 채무자를 면책해주면 안된다고 따지며 열을 높이기도 한다. 그렇다 한들 채무자로부터 당장 돈이 나올 구석이 없다는 것 또한 채권자도 기실 잘 알고 있다. 채권자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판사라고 하여 역시 그 자리에서 돈을 받아줄 뾰족한 수가 있을 턱이 없다. 모두가 법정에서 목에 삶은 고구마를 한주먹 집어넣은 기분이다. ‘채권자집회 및 의견청취기일’이라는 이름의 파산 재판은 형사 재판처럼 사실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는다거나 민사 재판처럼 변호사들의 화려한 법리 주장이 오고 갈 일이 거의 없다. 본인의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하는 이도 없다. 채무자들은 그저 조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의 재산 상태를 낱낱이 살펴본 판사의 입에서 ‘면책허가’라는 말이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이미 낙인과 원칙을 한껏 의식한 상당수의 채무자들은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욕심 때문에 삶을 망쳤습니다. 부디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용서를 구하고, 자책과 참회를 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판사에게 제출한다. 형사 재판에서의 반성문 내용 그 이상이다. 실제로 채무가 증대되어 가세가 기운 경위를 보면, 잘 자라던 갈대가 가을 태풍을 만나 허망하게 쓰러진 것처럼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렇게 허망하게 경제적으로 무너졌음에도 비난당하고 무능력하다고 낙인을 찍힌 채무자는 우리네 지인의 가족이거나, 앞집에 사는 이웃이거나, 자주 가던 식당의 사장님일 것이다.
추석이 지나면, 수확이 끝나고, 곧 겨울이 온다. 가을 태풍에 쓰러진 갈대와 같은 채무자에게 경제적으로 새 삶을 재도전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도산법의 근간을 재조명해보고, 추운 겨울에 앞서 마음이라도 따뜻할 수 있도록 채무자에게 비난과 낙인이 아니라 배려와 응원을 생각해보는 것이 지금과 같은 매서운 경제 현실을 마주하는 바람직한 시각이 아닐까 한다. 배려와 응원 속에 월동을 한 갈대는 분명히 다음 해 가을에 찬란하게 바람결에 몸을 흔들며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