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매일 하는 말(言)에는 어떤 마력과 같은 힘이 담겨 있다. 좋은 말 한마디가 지혜가 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말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 짐이 되기도 한다.
여기 좋은 사례가 있다. 조선시대에 정육 일을 하는 박만득이라는 백정이 있었다. 하루는 두 양반이 그에게 고기를 사러 왔다. 그중 한 양반이 말했다. “야, 만득아! 고기 한 근 다오.” 그러자 만득은 “네”라고 답하고 고기 한 근을 썰어 주었다. 반면, 옆에 있던 다른 양반은 정중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박 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그러자 만득은 언뜻 봐도 먼저 산 양반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고기를 썰어 주었다. 그것을 본 앞의 양반이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여 따졌다. “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찌 이 양반의 것과 내 것이 이렇게 다르냐?” 그러자 만득은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많이 배우신 분이 그것도 모르십니까? 손님 것은 만득이가 자른 것이고, 저 손님 것은 박 서방이 자른 것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요.” 그 말에 양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 이처럼 의미 부여성이 큰 게 언어의 힘이다.
한 방송의 오디션프로그램에 멘토로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그룹사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언어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멘티들에게 했던 촌철살인의 말 때문에 명언 종결자로 불리게 됐다. 또 자신의 멘티들을 상위권에 진입시키면서 국민 멘토라는 칭호를 얻었다.
김태원은 처음에는 국민 멘토로 불리는 것이 능력에 비해 과한 평가라고 생각하면서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을 “진짜 국민 멘토가 되자”라고 결정하고 나니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선언하거나 약속하지 않는 것을 말하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더 나은 행복과 변화를 기대하지 못한다.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보다 과감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어로 정의하고 선언해야 한다. 결국 변화란 자신이 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등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언어로 표현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삶을 구조화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말이 어떻게 한 사람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 발명왕 에디슨을 통해 알 수 있다. 에디슨은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에디슨의 어머니는 직접 에디슨을 교육하며 아들의 천재성을 발견했다. “넌 반드시 큰사람이 될 거야”라며 격려해 주었고, 에디슨 역시 그 말대로 됐다.
이처럼 큰인물 뒤에는 그들을 살려낸 격려의 말이 있다. 검은콩 한 말과 흰콩 한 말을 섞는 데는 한순간이지만 다시 원래대로 고르려면 한나절이 걸려도 부족하다.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 수없는 말을 한다. 말은 주의해서 쓰지 않으면 서로에게 상흔을 남길 수 있다. 말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가치를 전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