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메트로폴리탄 뉴욕]못다한 이야기15. 미국 대호황기 거부 컬렉터의 추억, 프릭 컬렉션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뉴욕 맨해튼 시내에는 메트로폴리탄을 비롯해 모마, 휘트니, 구겐하임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많은 뮤지엄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물었을 때 가장 좋았다고 대답하는 곳으로 항상 빠지지 않는 뮤지엄이 한 군데 있다. 바로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이다. 센트럴파크 우측 뉴욕 부유층 거주지로 소문난 업퍼이스트(upper east) 지역에 위치한 이 대 저택같은 뮤지엄은 마치 20세기 초로 되돌아가 미국의 부자가 사는 집을 한가로이 둘러보는 듯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매우 독특한 예술 공간이다.

헨리 클레이 프릭_초상화

프릭 컬렉션을 제대로 보려면 우선 이 컬렉션의 주인장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프릭은 184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적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위스키 제조공장을 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업가로서의 꿈을 키운다. 어린시절 부터 류마티즘과 만성 소화장애라는 병을 달고 살았지만 타고난 사업기질로 약관 21세에 철강의 필수재료인 제철용 코크스 회사(Frick & Co)를 차린다. 공장을 짓기 위한 땅은 매입했지만 코크스를 추출하기 위한 용광로는 살 돈이 없던 프릭은 1871년 당시 유명 은행이었던 멜론 은행(The Mellon Bank)의 소유주 멜론을 찾아가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의 예상대로 철강산업이 호황을 이루면서 불과 8년 후인 1879년 프릭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당시) 백만장자의 거부 반열에 오르게 된다.

프릭이 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는 그의 능력도 컸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2명의 인물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명은 그의 동업자이자 고용주, 친구이자 적이었던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오늘날 거대 투자은행으로 발전한 제이피모건의 창립자이자 비교불가했던 컬렉터 존 피어폰트 모간(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이다. 먼저 앤드류 카네기를 보자. 카네기는 철강산업 독점을 위해 1882년 프릭이 운영하던 Frick Coke Company를 인수한다. 1889년 카네기는 당시 40세였던 프릭을 그의 회사 Carnegie Brothers & Co의 회장으로 선임하는데, 프릭은 이 회사를 키워 전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인 카네기 철강(Carnegie Steel Company)으로 우뚝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회사를 키우기 위해 불가피했던 많은 인수 합병(M&A) 과정에서 프릭은 실질적 소유주 카네기와 자주 충돌했고 1900년에는 급기야 카네기가 프릭을 해고하는 사태에까지 이른다. 당시 프릭은 카네기 철강의 지분중 6분의1을 가지고 있었는데, 카네기는 이를 당시 시가(時價)에 훨씬 못 미치는 장부가(帳簿價)로 청산하도록 강요한다. 이를 거부한 프릭과 카네기간 분쟁이 계속되었지만 결국 프릭이 당시 1,500만달러를 받고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때문에 이후 죽을 때까지 프릭과 카네기는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둘은 같은 해(1919)에 생을 마감한다. 프릭의 면모를 추정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건이 있다. 19세기말 극심했던 노조파업이 카네기 철강에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1892년 프릭은 러시아 아나키스트가 쏜 총 두 발을 목에 맞고 쓰러진다. 천운이 따랐는지 프릭은 큰 부상 없이 다시 회복된다. 과격 노조도 노조였지만 프릭이 얼마나 냉정한 자본가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존 피어폰트 모간과의 인연을 살펴보자. 프릭이 회장직을 물러난지 정확히 16개월만에 카네기 철강은 당시 모간이 운영하던 미국 철강(US Steel Corporation)에 인수된다. 이 거대한 철강연합이 구성된 후 프릭은 그의 명성과 실력을 인정받아 연합의 이사로 선임되는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사회 멤버로 활동한다. 결국 카네기로부터 거의 해고되다시피 했지만 카네기 철강을 인수한 회사의 이사로 화려하게 컴백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니, 프릭 개인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말년이었다고 할만 하다.

프릭 컬렉션_건물

이제 프릭의 예술품 컬렉터로서의 인생을 짚어보자. 젊어서부터 거부의 반열에 오른 프릭은 일찍이 예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예술품을 매집한다. 특히 런던의 유명 박물관 왈라스 컬렉션(Wallace Collection)을 방문하고 나서부터는 자신도 미국 시민을 위한 종합 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를 대중에게 환원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당시 유럽은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대혁명기였기 때문에 왕족들이 소유했던 엄청난 예술품들이 경매시장에 헐값 매물로 나오는 사례가 매우 빈번했고 왈라스 컬렉션도 이런 예술품들을 사들인 대표적인 컬렉션이었다. 컬렉터로서의 꿈을 안고 프릭은 1914년 지금의 프릭 컬렉션이 위치한 5번 애버뉴 70번 스트리트에 자신의 맨션을 건축한다. 사실 프릭 컬렉션, 즉 프릭이 살았던 맨션은 그 자체로도 미국의 대호황기(gilded age) 유럽의 귀족을 흉내내며 살았던 미국 거부들의 삶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술품이다. 이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느낌은 이곳을 방문해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프릭 내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결정적인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1913년 존 피어폰트 모간이 세상을 떠나면서 프릭과 그의 인연이 다시 한번 이어지는 순간이다. 당시 모간의 수집품들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으로 매각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지만 예상을 깨고 많은 수집품들이 뉴욕 경매시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때까지 예술품을 사들이긴 했지만 19세기 영국 회화 등 일부 시대에 한정되어 편협했던 프릭의 컬렉션을 단숨에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프릭은 놓치지 않았다. 만약 이때 모간의 수집품들이 프릭의 수중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면 지금처럼 프릭 컬렉션이 높게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프릭 컬렉션은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1500점 이상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에 36점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를 필두로 벨리니(Bellini), 홀바인(Holbein), 르누아르(Renoir), 게인즈버러(Gainsborough), 터너(Turner), 렘브란트(Rembrandt) 등 회화와 17세기 조각, 18세기 가구, 도자기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루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아 어느 것만 소개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프릭 컬렉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고 개인적으로 좋았던 마스터피스(masterpiece) 몇 점만 소개해보려 한다.

베르메르_Officer and Laughing Girl

우선 베르메르 작품이다. 램브란트(Rembrandt), 할스(Hals)와 더불어 네덜란드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그는 워낙 소작(小作)인데다 간결하면서도 순수한 빛의 처리가 탁월해 현대미술 관점에서도 재조명되고 있는 전설적 화가이다. 웨스트 갤러리에 그의 작품 3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Officer and Laughing Girl(c. 1657), Girl Interrupted at Her Music(c. 1658~59), Mistress and Maid(c. 1666~67) 등이 그들이다. 명암 처리는 램브란트가 최고라고 하지만 베르메르의 빛처리는 이와 또 다르다.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 예를 들어 ‘Mistress and Maid’에서 하녀가 어두움 속에서 희미한 불빛에 반사되는 편지를 읽는 장면을 보면 그 간결한 사실감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Officer and Laughing Girl’에서도 창가로 흘러들어오는 밝은 빛을 머금고 웃음 짓는 여인의 모습을 한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19세기 여인초상_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Comtesse d'Haussonville

다음은 노스(North) 홀에 있는 Jean-Auguste-Diminique Ingres(1780~1867)의 여인 초상화 Comtesse d’Haussonville이다. 화가를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뺨에 한손을 포개어 자세를 취한 이 백작부인의 모습은 마치 실제 그 여인이 그 자리에 머무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뒤편의 거울에 비치는 그녀의 뒷모습도 사실감을 더해준다. 푸른색 드레스 자락 하나 하나도 정숙하면서도 무언가 재능을 감춘 듯 생기있게 묘사되어 있다. 실제 프릭 컬렉션에는 많은 여인 초상화가 있는데, 프릭이 특히 19세기 여인 초상화를 좋아해서 집중적으로 매입했다는 설도 있다.

벨리니_St.Francis in the Desert

마지막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리빙(Living) 홀에 있는 15세기 화가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의 St.Francis in the Desert(c.1480)이다. 성 프란체스코가 사막 한가운데 암굴에서 깨달음을 얻고 밖으로 나와 하느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뭐랄까. 내 안에 있던 답답한 무언가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듯한 시원함. 절대자를 맞아들이는 인간의 겸허함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승화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림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었고 그 후로도 별로 없었다.

말년의 프릭의 취미가 새벽에 홀로 컬렉션을 돌아보며 대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많은 것을 이룬 사람도 결국은 기부와 나누어줌, 그리고 예술이 종착역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뉴욕을 방문했을 때 옛날 대호황기 미국의 어떤 부자의 삶이 어떻게 대중에게 나누어지고 있는지를 프릭 컬렉션을 통해 보고 느낀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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