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눈밭이다
바람이 마른 모래처럼 일어난 눈가루를 휘몰아간다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斷指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무제無題라고 할
너의 순일한 마음에 대해 쓸까
영어囹圄에 갇힌 너의 죄 없는 욕망에 대해 쓸까
새하얀 너를 앞에 두고 토해냈던
내 먹물 같은 설움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깨어나지 못한 너의
침묵에 대해 쓸까
이 쇠잔한 생에 표착한 너의 불운에 대해 쓸까
외로워, 외로워 말하는 가오나시顔無し 같이 끼니마다
밥을 보채는 너의 허기진 영혼에 대해 쓸까
정해진 과오를 범하고 정해진 책망을 듣는 너의 차갑 게 굳어진 습習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하지만 내 가난한 가슴과 옹색한 문장으로는
너를 쓸 수 없다
너라는 이름의 눈밭은 오늘도 그만큼의
햇빛, 그만큼의 별빛을 받아 홀로 아득하다
너의 눈밭에 그물 같은 붉은 칸을 내려 한
미욱한 나를 연해 뉘우친다
아무도 미워해 본 적 없는
아무도 시기해 본 적 없는
너라는 이름의 눈밭
저 깊고 아득한 너의 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