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월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당시 국내 대형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였던 윤재윤 전 춘천지방법원장의 휴먼 에세이 '소소소(小素笑)'다. 2010년 첫 에세이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에 이은 두 번째 에세이로 강원도의 내용이 풍부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두 번째 책을 낸 지 1년여 뒤인 지난 16일 명예 강원도민인 윤재윤 파트너 변호사를 만나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을 들어봤다.
법조인 생활 40년 격세지감
사건 많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져
판사 업무량 크게 늘고 전문화
반면 법률시장 규모는 제자리
판사·변호사 모두 힘들어진 상황
강원도에 대한 애정 남달라
퇴임 당시 춘천 정착하려다 무산
요즘은 은퇴 후 동해안 거주 고려
강원도 장점 주민들은 잘 몰라
자신들 삶의 터전에 긍지 갖길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알려 달라=“변호사 일과 사회 봉사 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다. 건설법학회장을 맡고 있는데 건설법과 관련 여러 연구도 하고 최근 7판째 책을 발간했다. 강원도를 자주 찾는다. 지난해 가을에는 건설부동산 분쟁그룹과 춘천 강촌에 MT를 갔다. 스카이워크도 찾았는데 발전이 더딘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두 번째 에세이 '소소소(小素笑)'에는 강원도 관련 에피소드가 많다=“춘천지방법원장 재임 당시 중앙 일간지에 4주 간격으로 연재를 하고 있었다. 당시 글을 모아 출판을 했다. 에피소드 중에 기억나는 것은 춘천 동내마을의 한 이발관이다. 당시 관사였던 춘천 하이마트 인근 현대아파트 옆 공지천에서 출발해 동내초교 인근 동내마을을 자주 찾았다. 그때 동내마을 이발관의 이발사와 자주 만나 이발도 하고 대화를 나눴다. 이 내용이 중앙지에 실렸는데 이후 여러 지인이 가보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이처럼 춘천이 좋은데도 정작 춘천 주민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고(故) 최원석 화가 그림이 책의 내용과 잘 맞는 것 같다=“고 최원석 화가는 출판사에서 그림이 좋다며 연결해줬다. 글과 그림이 잘 매칭이 된 것 같다. 책에 담긴 그림 중에 남자 아이 세 명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을 좋아한다. 제가 3형제 첫째인데 우리 형제를 그린 것 같아 정감 있었다. 아이들의 동심 세계를 그렸는데 책이 나오던 시점에 최 작가가 숨져 안타까웠다.”
■2011년 11월 춘천지법과 본보 간 법조 칼럼 '법정에서 만난 세상'이 시작됐다. 윤 변호사가 주도 했는데 당시 칼럼을 만든 목적은 무엇인가=“아직 '법정에서 만난 세상'이 이어진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재판이라는 것은 신뢰를 기초로 한다. 그 신뢰를 얻는 방법은 서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판사의 경우는 신비주의라고 할까, 가려져 있는 부분이 있어 재판이 어렵다. 재판 제도의 변경 등을 알려주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소통으로 의미가 있다고 봤다. 특히 강원일보는 역사가 오래된 강원도의 대표 신문이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40여년간 법조인으로 살면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달라=“우선 사건이 많이 어려워졌다. 초임 시절 사건과 요즘은 질적으로 다르다. 1980년대는 자동차 손해 배상, 계 사건 등이 많지만 요즘은 신탁, 부동산 프로젝트, 증권 등 어렵고 복잡해졌다. 판사들의 업무량도 엄청나게 늘었고 전문화됐다. 변호사 수도 크게 늘었다. 반면 법률시장 규모는 확대되지 않았다. 경제가 좋지 않아 더 한 것 같다.”
■사회가 빠르게 변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어떤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분쟁이 있었는데 시스템에 대해 원고와 피고가 알고 있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 시스템에 대해 해설과 관련, 원고의 문헌과 피고의 문헌이 다르다. 그 정도로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전문화됐다. 신탁의 경우에도 전문적인 신탁의 경우 개념 자체가 다르다. 전에는 생각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결국 판사도 변호사도 모두 힘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어렵다고 했지만 윤 변호사는 삼성 사건도 맡았고, 국내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를 맡기도 했다=“'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사건이 변호사 전업 후 1호 사건이었다(※ 윤 변호사는 개업 직후인 2011년 3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의 차명주식 상속분 반환소송과 관련, 이건희 회장 측 소송 대리인단으로 활동했다). 당시 삼성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대형 로펌에 있으면 큰 사건을 맡을 기회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운이 좋았다.'”
■그럼 30여년간의 판사와 10여년간의 변호사 중 적성에 맞는 것은=“둘 다 안 맞는다(웃음). 판사는 재판의 중압감이라는 것이 있다. 판사시절 후배들과 대화하면서 '판결 불가능 선고 주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민사건 형사건 다 있다. 예컨대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유죄', 증거가 없다면 '무죄'를 선고하면 된다. 하지만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사건들이 있다. 그럴 때 무죄를 선고하면 이론상 맞겠지만 피해자는 고통을 받는다. 재판이 그만큼 어렵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판사가 잘 차려진 상에서 '간'을 본다고 하면 변호사는 부엌에서 원재료를 이용해 잘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변호사의 일은 원재료를 유리하게 잘 정리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고 스트레스도 심했다. 법률가가 꼭 맞는 직업이었는지도 생각하기 어렵다. 힘들다.”
■법조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춘천에서의 사건이라고 하면 고등법원 사건이 기억난다. 50대 후반의 생필품 상습 절도범이었다. 항소심에서 남성은 혼잣말로 '이제 또 이런 생활을 해야 되는 구나'라고 하기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그 남성은 직전에 교도소에서 나온 뒤 일용직을 하면서 우연히 주말마다 피에로 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일을 하면서 스스로 쓸모가 있다고 느꼈다고 했는데 이제 못 하게 됐다고 말을 한 것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강원도를 참 사랑하는 것 같다=“법원장 퇴임 당시 춘천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집을 하나 장만하려 했다. 개인적으로 산 밑을 굉장히 좋아한다. 2년 정도 수차례 춘천을 찾아갔지만 집을 구하지 못했다. 이후 일이 바빠 가지 못해 결국 서울 북한산 밑으로 이사갔다. 현재도 갈 형편이 안 된다. 다만 방향을 바꿔 생각 중이다. 요새는 동해안도 검토 중이다. 미세먼지 때문이다(웃음). 지인이 동해시에 사는데 굉장히 좋다며 추천한다. 언제 은퇴할지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동해안으로 갈 생각도 있다. 강원도민들은 그런 점에서 삶의 터전에 감사하고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