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나무로 만든 친환경 주택
남재천 이사장 사비로 조성
고목·시냇물·산책로서 힐링
사진가·작가·피아니스트…
입주예술인 18명 창작 매진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1월이 시작됐지만 남도의 겨울은 아직 소복이 쌓인 눈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눈으로 덮인 하얀 세상을 만날 수 있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 만큼 아쉬움이 더해간다. 움츠러드는 기운을 떨쳐내고 무작정 길을 나서보자. 겨울여행이 주는 묘미는 고요함이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벗어나 만난 조용한 시골마을의 겨울 속에서 진짜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신팔도유람 여행지는 '예향(藝鄕) 남도'의 예술인마을이다.
굴뚝 위로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연기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싸목싸목 산책하듯 숲 속 정원을 오르다 보니 나무 기둥이 꼼꼼하게 박혀 있는 흙집이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일 년 밥상을 책임져 줄 장(醬)이 담겨 있어야 할 항아리에는 알록달록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이곳은 전남 나주시 노안면의 '남천예술인마을'이다. 도예가, 사진작가, 서양화가, 피아니스트, 공연기획자, 시인, 시나리오 작가, 음식연구가 등 예술인들의 집합소인 이곳은 외부 자본이 전혀 투입되지 않은, 개인이 사비를 털어 예술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남들은 이곳을 예술인마을이라고 부르지만 그보다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 마을은 자연 친화적인 마을이라는 거예요. 나무와 꽃, 사계절 새들이 찾아와 지저귀는 곳이죠. 봄에 오셨으면 기막힌 풍경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봄이 되면 또 한 번 놀러오세요.” 경기 여주에서 내려와 새로 입주한 신입(?) 양인목씨 집에 모여 앉은 예술인들은 차분한 목소리로 마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이곳은 자연을 품고 있는 마을입니다.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며 자유롭게 문화예술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설립했지요. 예술인들이 모여 발생하는 에너지로 마을이 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남천예술인마을을 설립한 이는 남재천(61) 이사장이다. 예술인이 아닌 '문화 애호가'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 이사장은 궁극적으로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나주를 만들고 외국인들이 우리 고유 문화를 찾아 한국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예술인마을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흙과 나무만을 이용한 친환경주택을 고집했으며, 주변 경관을 그대로 살려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연출했다.
자연이 만든 흙길 사이사이에는 정자와 냇물, 고목, 언덕이 함께하고 있어 작은 숲 속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누구라도 한번 찾아오면 이곳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만 같은 곳이다.
마을이 만들어졌으니 들어와서 살아갈 예술인들을 찾아야 했다. 남 이사장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예술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과 함께 입주 예술인들을 찾아나섰다. 하나둘 지인을 통해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마침내 2011년 11월, 정식으로 입촌식을 갖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입주가 확정된 예술인들에게는 흙집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입주 조건은 간단했다. 주민등록을 나주시로 옮길 것, 수도세와 전기세는 본인이 부담할 것. 여기에 여건이 된다면 화재보험까지 가입해 주면 좋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예술인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을을 만들면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해요. 하지만 각자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예술활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마을을 꾸리면서 제 스스로 정한 방침이 있다면 '간섭하지 않기'입니다. 마을에는 현재 18명의 예술인이 입주해 있다. 이날 양씨의 집에 모인 이들은 10여명. 이 가운데 6명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이들이다.
각자의 보금자리 공개에 흔쾌히 응해준 예술인들을 따라 마을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양인목씨의 집과 이웃해 있는 곳은 사진작가 최옥수씨의 공간이다. 흙벽에 걸려있는 '최옥수 사진방' 팻말이 눈에 띈다.
수채화 작업을 하는 여류작가 윤경희씨 공간은 마당부터 눈길이 간다. 장독에 직접 그려넣은 작품들이 상당하다. “꽃피는 봄에 오면 집 앞에 쭈욱 펼쳐진 화려한 꽃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윤 작가는 화실에서 직접 작품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도예가 유영대 작가의 공방 이름은 '남천요'다. 유 작가가 직접 만든 찻잔과 그가 중국을 오가며 가져온 다양한 차(茶)가 많은 탓에 이곳은 종종 예술인들의 사랑방 겸 카페가 되기도 한다.
남 이사장은 “좋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 진정한 '명당'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비를 들여 예술인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제공하고 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소통하는 벗이 생겼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값어치를 선물받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광주일보=이보람기자·사진=나명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