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다. 혈액순환을 돕고 마음을 열어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한다. 술 예찬이 많은 이유다. “한잔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해 준다.” 그리스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말이다. 문제는 과음이다. 판단력 장애와 충동조절 실패를 유발한다.
▼영국 정치가 글래드스턴은 “전쟁, 흉년, 전염병 이 세 가지를 합쳐도 술이 끼치는 해독에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과음으로 망신당한 유명인은 많다. '주사 챔피언'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다. 1994년 8월 독일 방문에 나선 옐친은 환영연주회 무대에 뛰어올라 춤추고 노래하고 악단을 지휘하는 원맨쇼를 펼쳤다. 그해 9월 아일랜드 순방길에서는 술에 취해 내리지 못하는 바람에 정상회담을 펑크 내기도 했다. 국격을 망각한 최고 지도자의 술에 취한 추태였다.
▼중국에선 애주가(愛酒家)의 59%가 저녁에만 술을 마시지만 35%는 낮술도 즐긴다고 2012년 인민일보가 전했다. 특히 공무원들이 공금으로 낮술을 마시는 게 오랜 악습이라고 한다. 허난성 정저우시가 2011년 예산을 아끼려고 공무원에게 낮술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다. 한국인의 낮술 문화도 오랜 전통을 지녔다. 조선시대 화가 김후신은 대낮 가을 숲에서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선비들을 해학적으로 담은 풍속화를 남겼다. 영조는 “장교와 군졸들이 대낮에 술을 마시고 칼을 뽑아 들기도 하고, 시장에서 술을 강제로 요구하는 폐해가 심해 현장에서 발각되는 즉시 처벌하라”고 엄명을 내렸을 정도다. 2013년 발표된 세계 질병부담 연구 결과에 따르면 67가지 건강 위험요인 중 우리나라에서는 술이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이었다.
▼담뱃값에 이어 술값 인상론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담뱃값이 오르자 '가치담배'가 부활하고 '전자담배' 판매고가 올라가는 등 '담배시장'이 요동친단다. 술값 인상의 후폭풍은 어떨까. 애주가들의 어떤 '행동지침'이 나올지 궁금하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