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지 한달이 지났지만, 국민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동과 기쁨의 여운은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처럼 생생하다. 세월호 사고의 아픔 등 여러 어려운 일로 지쳐 있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교황의 위로와 격려는 곧 희망으로 다가왔다. 4박5일 동안 체류하면서 여러 차례의 일정과 연설 그리고 시복미사는 한국 천주교 역사상 길이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필자는 가톨릭 신앙단체인 울뜨레야 간사 자격으로 광화문 시복미사 봉사를 위해 참석하여, 전국 각지에서 몰린 100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는 물론 일반 국민의 뜨거운 열기를 마음껏 느꼈다.
교황은 어린이와 사회적 약자 등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우리의 손을 잡아주었고, 그의 사랑과 겸손, 용기와 위로는 큰 울림을 주었다. '교황의 손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대자 마치 엄마의 젖인 양 교황의 손가락을 빨았고,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고 한동안 아기를 바라본 교황의 행동은 인상적이었다. 그 사랑이 담긴 그 '교황의 손가락'은 우리 교회와 사회에 진정으로 무엇을 가리켰는가? 그가 어떤 메시지를 주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교황은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으로, 진정한 대화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진정한 만남을 이끌어낸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언제부터인가 공감, 대화, 소통과 같은 단어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만 같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말들을 즐겨 사용했다.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소리만 외쳤지 과연 공감을 통해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는가! 남과 북, 가진 자와 빈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진보와 보수 간, 여당과 야당의 대립 구도가 교황처럼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공감하려는 의지를 갖고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활발하게 시작되기를 바란다.
교황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주장했다. 즉 평화란 상호 비방, 무익한 비판,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서와 관용으로 평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이념과 총대의 대립과 같이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성경말씀처럼 같은 한반도, 같은 한민족,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우리의 형제로 인정하면서 이해하고 협력해 나아가야 한다.
소통이 실종된 불통과 대립으로 정치가 시끄럽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여야와 유족들 간의 길고 긴 갈등을 지켜보며 이제는 혼자만의 연출을 멈추고, 소통과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교황의 손가락이 가르친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