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역사속의 강원인물]홍천용씨 시조 용득의 연보

(1)팔만대장경. (2)홍천군 동면 덕치리 홍천용씨 시조 유허비역에 보관돼 있는 위패. (3)지난 4월2일(음력 3월3일) 홍천용씨 후손들의 화산제 시제 봉헌 모습. 홍천=오윤석기자

■생년 미상 고려 후기 문신으로 홍천 용씨 시조. 출생 당시 1196년(고려 명 종 26년)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최씨 무신정권 출범한 격동기.

■시어사(侍御使)를 거쳐 1241년(고 려 고종 28년) 문하시중(門下侍中) 이 됨.

■1231년 몽골 침입. 3개월 만에 항 복했지만 지나친 공물 요구와 횡포 가 심해 강화조건을 이행하기 힘들 게 되자 최우의 주도하에 강화도로 천도. 용득의도 가솔을 이끌고 강 화도로 이주.

■1236~1251년 16년에 걸쳐 6,778권 에 8만1,258매에 달하는 방대한 팔 만대장경(국보 제32호) 제작. 판수 가 8만여개에 8만4,000여 경전 말 씀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도 칭함. 고려정부가 용득의를 사 업 총괄지휘자로 정함. 몽골의 침 입으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최씨 무신정권은 먼저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고 팔만대장경 각판.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됨.

■고려와 몽골의 화친조약으로 항몽 적인 세력이 정리되자 벼슬에서 은 퇴, 홍천군 북방면 장항리로 낙향 후 금학산에 용수사(龍遂寺)를 창 건하고, 불도들을 위한 수련장인 학 서루(鶴棲樓)를 세워 경서(經署)와 시례(詩禮)를 강의함. 용수사 인근 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자손이 대대로 세거(世居).

■1273년(고려 원종 14년) 전후로 세 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됨.

■조선 태조 때 용득의의 6세손인 용 희수 개국공신으로 공조·예조판서 를 역임. 그의 아들 용천기도 개국공 신으로 인정돼 공조판서를 역임.

■매년 음력 3월3일 홍천군 동면 덕 치리 홍천용씨 사당에서 시제.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