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역사속의 강원인물]천년 세월에 스러진 절터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불심을 만났다

김도연 소설가와 함께 떠나는 용득의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

(1)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자 항몽론자인 용득의는 벼슬에서 물러나 홍천군 북방면 금학산에 용수사를 창건하고 불교와 경서를 가르치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금학산의 모습. (2)홍천군 동면 덕치리 홍천용씨 시조 용득의의 위패를 모신 사당. (3)홍천군 동면 덕치리 홍천용씨 시조 용득의 유허비역. 홍천=오윤석기자

'연기(緣起)' '공(空)'의 이치를 들어도

도무지 알 듯 모를 듯 요령부득하다

팔만대장경을 읽는 시작부터 깜깜하다

큰 수레바퀴 앞의 사마귀나 다름없다

탐방에 나섰지만 불경처럼 막막했다

절은 사라지고 사람은 밭으로 갔으니

팔만대장경에서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번뇌를 벗어날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불경을 읽어도 배가 고파오는 걸 보니

불문(彿門)에 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 사람에게 대장경이 어디 있는가 물었다

하나는 "네 마음속". 하나는 답이 없다

나는 대장경의 한 글자도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어진다.” (아함경)

해인사대장경(海印寺大藏經), 또는 고려대장경, 매수가 8만여 판에 달하고 8만4,000번뇌에 대치하는 8만4,000법문을 수록하였기에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하는 대장경을 넘기다 내 눈길이 머문 첫 법문이다. 눈길이 머물긴 했는데 알 듯 모를 듯 요령부득하다. 모든 현상이 생기고 소멸하는 법칙인 연기(緣起)에서 공(空)으로 가는 길이라는데 시작부터 깜깜하다. 더군다나 나는 한없이 두껍고 깊은 대장경의 겨우 첫 장을 펼쳤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대장경을 원고지 20매로 축약하겠다는 꿈을 꾸는 한 마리 사마귀나 다름없다. 어쩌겠는가. 수레바퀴에 깔려 흔적 없이 사라지더라도 부지런히 대장경을 넘기는 수밖에. 몽골의 침입에 시달렸던 고려의 백성들은 절 한 번 하고 한 글자를 새겨 이 거대한 경전을 완성하였다지 않는가.

하지만 투덜거림까진 멈출 수 없다. 투덜거리며 '대반야바라밀다경'을 뒤적거리다 보살의 서원(誓願)을 읽는다. “모든 존재의 모양에서 집착을 버리겠다. 모든 중생과 마음을 같이하겠다.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하겠다. 모든 중생을 구제할지라도 구제했다는 생각조차도 가지지 않겠다. 모든 법의 생멸이 없음을 깨닫겠다.” 훌륭한 서원인데 여전히 '없음'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분별하지만 사물의 본성은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니다. 집착하기 쉬운 마음이 깨끗한 것을 가까이하고 더러운 것을 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방편일 뿐이다.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서 보면 모든 존재는 다 깨끗하다.” 방편(方便)이라. 방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금강경'으로 달려간다.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 / 마음은 밝은 거울 / 언제나 털고 닦아 / 먼지 묻지 않도록 하리.”

이에 혜능(慧能)도 게송을 지었다.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 밝은 거울 또한 틀에 얽매이지 않은 것 / 본래에 한 물건도 없거늘 / 어느 곳에 먼지가 일어나리오.”

결국 혜능이 육조(六祖)가 되었다. 혜능이 다시 설한다. “모양으로 있는 모든 것,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이 모든 형상이 모양이 없는 것임을 직관할 줄 알면 곧 부처를 보는 것이오, 마음을 깨친 것이다.” 내 눈은 모양 있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차라리 신수의 게송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게 인간이 지닌 한계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긴 알겠는데, 어쩌랴, 매번 털고 닦는 일만 겨우 반복하고 있으니. '반야심경'의 무(無)고집멸도를 중얼거리고 있지만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니. 나는 대장경을 덮고 홍천군 동면 덕치리, 공작산 수타사 가는 길에 자리한 용득의 유허비로 길을 떠난다.

고려 후기의 문신 용득의(龍得義)에 대한 기록은 간략하다. 생졸년 미상. 시어사(侍御使)를 거쳐 1241년(고종 28)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었다. 팔만대장경을 만들 때 사업을 총괄 지휘하였다고 한다. 또한 강원도 홍천에 용수사를 창건하고 인근에 터를 잡아 살게 되면서 자손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탐방에 나섰지만 불경처럼 막막했다. 홍천군 북방면 장항리 금학산 골짜기에 있었다는 용수사란 절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사당과 유허비를 지키는 이금자 항머니는 수타사로 김매러 가셨으니 팔만대장경에서 도망칠 방법이 없다. 팔을 잘라 부처님 앞에 내던지진 못하더라도 시늉이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승만경'은 좀 만만해 보인다. “계를 어기지 않겠습니다. 어른들을 업신여기지 않겠습니다. 모든 중생에게 성내지 않겠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나 재산 때문에 질투하지 않겠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모으지 않겠습니다. 고독한 자, 감옥에 갇혀 있는 자, 병이나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를 보면 끝까지 돌보겠습니다.” 역시 신수의 영역이 내게는 더 가깝게 느껴진다. '화엄경'은 방대하므로 재빨리 건너뛰고 '법화경'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다. “사리불이여, 이 세상은 마치 불난 집과 같다. 온갖 괴로움이 가득 차 있어 무섭기 그지없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불처럼 맹렬하게 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벗어난 사람이지만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의 중생들은 모두 나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 나 또한 불난 집에서 물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불을 끄러 뛰어다니는 그 중생 중의 한 명이다. 지나온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러했다.

집이 불타는데 밖이라고 편할 까닭이 없다. '인왕경'의 한 구절을 옮긴다. “만일 이 나라에 해로운 일이 있거나 원수가 국경을 침노하거나 흉년이 들고 병이 드는 여러 가지 재난이 있더라도, 어떤 비구가 이 경을 지니고 있으면 우리는 그 비구에게 청하여 우리 힘으로 그 나라의 도시나 시골로 가서 이 경을 널리 유포하여 여러 가지 재변을 소멸시키겠다.”

중생이 앓으면 나도 앓는다는 '유마경'을 지나 '능가경', '약사경', '미륵삼부경' 등을 지나 '부모은중경'에서 걸음을 멈춘다.

“아이를 낳을 때 서 말 여덟 되의 피를 흘리고 기를 때는 여덟 섬 네 말의 혈유(血乳)를 먹이는 어머니, 그런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왼편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편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살갗이 닳아서 뼈에 이르고 뼈가 닳아서 골수에 이르도록 드넓은 수미산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

아이고, 저 혼자 잘났다고 집 떠난 이 세상 자식들의 아픈 곳을 찌르는구나! 잠시 경을 덮고 밖으로 나가 먼 산을 오래 바라본다.

먼 산은 갓 피어나기 시작한 코스모스 너머에서 흰 구름을 이고 있다. 홍천군 북방면에 위치한 금학산이다. 용득의가 창건했다는 용수사가 숨어 있었던 산이다. 팔만대장경이 완성되고 벼슬에서 물러난 다음일 것이다. 이규보는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서 몽고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대장경 판각을 진행했다고 부처님께 고했다. 용득의 역시 만년에 절을 짓고 저 산속에서 생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물론 대장경 판각은 고려의 왕족과 귀족, 일반 군현민, 각 종파의 승려, 모두가 자신이 가진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완성한 것임에 틀림없다. 용득의도 그중 한 사람일 테고. 홍천강 변의 '절골교' 위에서 나는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산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본다.

소승삼장으로 건너와 '증일아함경'을 들여다보니 '제자품'이 있다. 어느 날 부처님이 대중들에게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모두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마하가섭만 홀로 미소를 지었다. 마하가섭은 제자들에게 12조의 생활규범을 제시했다. '인가와 떨어진 조용한 곳에 머물 것. 항상 걸식을 할 것. 걸식할 때 빈부를 가리지 말고 차례대로 걸식할 것. 하루에 한 번만 먹을 것. 과식하지 말 것. 정오 이후에는 과실즙이나 설탕 따위도 먹지 말 것. 남루한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을 것. 세 벌 이상의 옷은 소유하지 말 것. 무상관을 닦기 위해 무덤 곁에 머물 것. 주거지에 대한 애착을 없애기 위해 나무 밑에 머물 것. 빈터에 앉을 것. 항상 앉아 있으며 눕지 않을 것.' 아랫배에 지방이 켜켜이 쌓여가는 내가 불문(佛門)에 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배가 고프기 시작해 대장경 밖으로 슬금슬금 나갈 기회를 엿보다가 '정법념처경'의 지옥품(地獄品)을 들여다본다.

“이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인연은 살생의 업보라고 한다. 착한 사람을 죽이고도 참회하지 않고 도리어 남에게 자랑하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 자와 습관적으로 살생을 일삼은 자들은 이 대지옥에 떨어진다. 이 지옥에 떨어지면 옥졸들이 달라붙어 쇠몽둥이로 치고 칼로 살을 뜨는데, 목숨은 계속 붙어 있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군. 지난 세월 내내 도망친다고 도망친 곳이 결국 지옥이었군. 나는 경을 덮는다.

덮고 나서 동쪽의 시인과 서쪽의 시인에게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동쪽의 시인은 네 마음속에 있다 하였고, 서쪽의 시인은 요즘 재미 들인 탁구를 치는지 아무 답이 없다. 나는 팔만대장경의 한 글자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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