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피에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두 알다시피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역작이다. 잔혹한 사채회수 청부업자인 주인공 '강도'가 모성(母性)을 계기로 속죄의 길을 걷게 된다는 내용이다(소중한 우리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기로 한다). 내용뿐만 아니라 미술을 공부한 감독의 작품답게 속죄의 길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장면들이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를 보는 눈은 다양하겠지만 이 영화가 필자에게 던져준 화두는 '자존감'이다. 잔혹한 주인공을 속죄의 길로 이끌어 준 것은 모성이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속죄의 계기는 자신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자각, 인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스스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속죄의 길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죄인을 '단죄'하는 형사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여러 고민이 뒤따른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피고인마다 범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유형화가 가능하고 그 유형에 맞는 양형 기준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피고인의 개인사, 환경 등 여러 양형요소를 감안하면 유형화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일단 양형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가령 징역 6월이 맞는지 징역 8월이 맞는지는 확고한 객관적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점이 일정한 사실만 인정되면 명쾌한 법률효과를 도출할 수 있는 민사사건에 비하여(사실 민사사건도 사실인정이나 법률해석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형사사건을 다루는 판사들에게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주기도 한다.
특히 형사재판을 하면서 '자존감'이라는 화두를 음미해 보면, 문득 자존감 결핍이 범죄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나 기질적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가치와 본질을 깨닫고 자존감을 지킨다면 범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형벌이 반복될수록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떨어질수록 범죄의 유혹에 더욱 쉽게 빠지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죄인을 단죄할 뿐 그들에게 자존감을 불어넣고 진정한 속죄의 길을 걷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점이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가장 근원적 고민이 아닐지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를 여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 사치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인문학이 사람의 가치와 본질을 일깨워 자존감을 불어넣어 주는 실용적인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 뉴욕에서는 한 언론인이 주도해 1995년부터 노숙인, 빈민, 죄수 등에게 철학, 시, 역사 등의 인문학을 가르쳐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클레멘트 코스(Clement Course)라는 과정이 있다고 한다. 실제 이 과정을 밟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화가 나는 상황에서 이전에는 주먹부터 나갔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자존감을 지키면서 범죄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고도 한다. 현재 이와 유사한 과정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러한 과정이 시도되고 있다고 하니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필자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다.
흉악범죄에 대하여 엄한 단죄를 요구하는 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흉악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에 대해 상응한 단죄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범죄인의 자존감과 진정한 속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속죄한다면 굳이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더라도 범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