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70)노인회장=우리 마을은 예전부터 뜰이 넓어 이웃간의 인심이 매우 좋았지요. 우리 마을에 온 걸인들조차 미리 찾아가겠노라고 예약을 하고 걸식을 할 정도였어요. 앞으로 우리 마을이 더욱 잘사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영철(76)씨=벽봉마을은 초계정씨 관동파가 대대로 생활해 오던 집성촌입니다. 예전에는 젊은이도 많았는데 지금은 고향을 지키는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에서 농촌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장춘관(71)씨=우천면 오원리에 살다가 35년전 먹고 살기 위해 벽봉마을로 오게됐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6남매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쌀값 하락과 태풍 피해로 인해 많이 어려움을 겪지만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식 모두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김태수(73)씨=우리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으신 어머님(허만능·94)께서 항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학사장교 출신으로 중령 진급을 앞둔 아들이 올해 꼭 진급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소망입니다.
△정병구(67)씨=호적 나이가 줄어서 올해 비로소 노인회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벽봉마을 노인회 막내인셈이죠. 노인회장님과 이장님, 그리고 마을 주민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는 새농어촌건설운동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병준(56)씨=17세때 객지에 나가서 10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정착, 낙농업을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한우를 키우고 있는데 내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젊어요. 벽봉마을이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화합된 마음과 한가족 같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정병순(여·54)씨=친정아버님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남편과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벽봉마을에서 살고 있어요. 장모님을 모시기 위해 처가로 들어와 함께 생활해준 남편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 뿐이예요. 우리를 위해 고생한 우리 남편 정말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주이복(여·80)씨=홍촌 내촌면에서 살다가 스무살때 외아들인 남편에게 시집와 홀어머니와 시누이를 모시고 생활해 왔어요. 남은 나의 바람은 도시에서 직장생활하고 있는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건강하게 잘사는 것 뿐이에요.
△차영숙(여·57)씨=처음 시집올때는 가곡리가 부자동네 인줄 알았는데 다른 동네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놀랐어요. 원주와 서울에서 식당 운영을 하다가 6년전에 시댁이 있는 가곡리에 정착했는데 지금은 마을 모두가 너무 다정스럽고 행복해요.
△홍옥남(여·50)부녀회장=우리마을 부녀회원들이 25명 있는데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많으신 분이 훨씬 많아요. 하지만 연세가 많으신데도 젊은사람 못지 않은 열정을 보이시며 잘 이끌어 주시고 계세요. 부녀회가 마을 발전에 한몫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래요.
△김기영(여·75)씨=열아홉살때 시집온 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6남매를 키웠어요.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두 잘되고 우리마을도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고재원(여·82)씨=홍천 동면에 살다가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안 끌려가기 위해 열여섯 나이에 동갑내기 신랑에게 시집을 왔어요. 어린나이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길쌈을 해서 시부모를 모시고 나이어린 시동생들 결혼도 시켰답니다. 밖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식들 건강하게 잘사는 것이 소원이에요.
△이호준(52)새농어촌건설운동사무국장=서울에서 생활하다가 2009년 귀촌했습니다. 어르신들이 그동안 새농어촌건설운동을 준비하느라 오랫동안 무척 많이 고생했습니다. 올해는 꼭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혜철(70)이장=소득이 있어야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올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은 그동안 친환경농업과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을 가공 판매하는 2, 3차 사업까지 이끌어 가기 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벽봉마을이 전국 최고의 친환경 건강마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횡성=이명우기자woolee@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