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이효석탄생 100주년](2)이효석의 문학세계

조광(1936.10)에 실린 '메밀…'의 첫째 쪽.

 -농익은 언어 화려한 문체 한국어의 아름다움 가장 감동적 묘사

 ■'메밀꽃 필 무렵'과 심미주의

 이효석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은 소설로서는 드물게 한국어를 가장 아스라한 경지에 올려놓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메밀꽃 필무렵'이 가산문학의 핵심은 아니었더라도 독자들은 이미 이 소설을 효석이 남긴 가장 걸출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감각적 묘사의 풍성함은 한국어에 서툰 독자들에게 미적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고 농익은 언어들은 교태를 보는 듯하다. 그만큼 '메밀꽃 필 무렵'이 품고있는 모국어들은 농염한 풍모까지 지니고 있다.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문장들로 효석의 문학을 순전히 평가하는 것은 무리지만 이 시적 언사들이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평창 봉평에서 열리는 효석문화제가 이 절창을 추억하는 국민적 제의로 보일 지경이다. 그만큼 '메밀꽃 필 무렵'은 효석문학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례적인 소설이지만 현재는 효석문학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올라있다.

 효석은 순수한 우리말에 능통한 작가였다. '궁싯거리다' '농탕치다' '각다귀' '애잔하다'같은 토착적 이미지의 언어들은 효석의 심미주의를 극대화하는 효력을 발휘한다. 또 '꽃다지' '질경이' '딸장이' '민들레' '솔구장이'같은 풀과 꽃의 이름들은 소설 속에서 음악처럼 흘러나오기도 한다. 3·4조의 전통적 리듬은 아니더라도 그의 문장은 노련하게 호흡을 고르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것과 같다.

 이같은 점은 동시대 한국 소설의 새로운 발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던 프로문학과 달리 예술적 표현들이 만개한 효석의 문학은 평단의 놀라운 반응을 사기도 했다.

 평론가 김종한은 '문장' 1권9호에서 “이효석씨의 '메밀꽃 필 무렵'은 아마 조선어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한 정점일 것이다”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게걸스러운 탐미주의자였던 이효석에게 언어는 미(美)를 탁마하고 재현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던 셈이다. 문학이 사상을 제쳐 놓고서라도 언어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효석의 오래된 문학관 탓이다.

 널리 지적된 바 있듯이 효석의 심미주의에는 로렌스 문학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효석은 언어 말고도 자신의 미적 욕망들을 애욕과 성애, 데카당스로까지 몰고갔던 것이다. '화분' '고사리' '분녀' '성화' '모기장' '개살구'같은 소설들은 성과 관음증에 대한 효석의 관심이 심상치않음을 보여준다.

 효석은 소설 '화분'에서 “지금도 옥녀는 한가한 틈을 타서 잠간 부엌 일을 멈추고 철벅거리는 미란의 자태를 창밖에 서서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그 고운 살결을 탐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쓰고있다. 옥녀가 드러내는 동성애적 감정에 대한 묘사다. 미란을 탐하는 옥녀는 '철벅거리는' 육감적 언어로 묘사되기도 하거니와 당시 흔치 않았던 동성애에 대한 관심은 효석이 지독한 탐미주의자였던 것을 시사한다.

 소설 '분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분녀는 '명준이' '만감이' '철수' 등의 사내들로부터 차례차례 강간을 당한다. 그러나 강간을 당한 후에는 그들이 좋아서 함께 살아나간다. 소설 속 등장인물 미란이 가야를 둘러싼 영훈과 갑자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사랑의 감정은 아무리 진보되어도 야만과 그다지 멀지 않은 까닭에 스스로 야만을 부르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듯 효석에게 성애와 애욕은 소설이 추구해야할 근본적인 탐미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다만 효석의 시대를 초월한, 혹은 전위적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탐미주의적 안목은 맹목적인 외국사조에의 동경으로 인해 훼손 당하고 있다.

 효석은 '미(美)의 변(辨)'에서 “미의 특정한 기준이 다른 것은 아니겠으나 바닷빛 눈과 낙엽빛 머리카락이 단색의 검은 그것보다 한층 자연율에 합치되는 것이며 따라서 월등이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고 밝힌다. 여기서 바닷빛 눈은 물론 '서양인의 눈'이며 낙엽빛 머리카락은 '금발'을 의미한다.

 이같은 탐미주의나 서구취향은 효석의 문학이 '의식적인 현실도피의 산물'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왜냐면 효석은 역사와 현실보다는 순수에의 미몽을 꾼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석의 문학은 이데올로기 문학이 난무했던 시기에 태어나 순수문학이 지닌 예술성을 특출나게 과시했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효석의 문학사적 가치는 프로문학 이후의 순수문학이 지녔던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었다는 데 있다.

 김상옥 서울대명예교수는 “이효석은 당대 최고의 심미주의자로 김동리선생보다 더 투철하게 일생동안 미를 추구한 사람이었다”며 “초기 프로문학이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그 징후가 읽힌다”고 평했다. 민왕기기자·wanki@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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