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이 사람의 삶]김병두 前도교육감

 -"영월한 교육가족으로 남겠습니다"

 “개인이 받은 훈장이 아닙니다. 2만여 강원교육가족이 받은 것입니다.”

 지난 11일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김병두(74) 전 강원도교육감은 “교육환경과 근무여건이 타 시·도에 비해 열악하지만 묵묵히 교단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교육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모든 공을 교육가족에게 돌렸다.

 국민훈장은 지난 81년 춘천교대교수 재임시절 목련장에 이어 두번째다.

 '전국 최장수 교육감' '강원교육계의 거목' '강원교육의 산증인' '강원교육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주역'으로 불리우는 김전교육감.

 12년간의 교육감 생활을 포함해 50여년을 강원교육 발전에 헌신하고 퇴임한지 1년여가 지났지만 강원교육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연인으로 돌아갔지만 죽는날까지 교육자의 한사람으로, 영원한 교육가족으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퇴임후 한동안 공직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어요. 아침에 빨리 밥을 차리라고 성화도 부리곤 했지요. 공식적인 일정이 몸에 배여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퇴임 1년여를 맞은 김전교육감은 “그동안 오랜시간 공직생활을 하며 소홀했던 남편 아버지 역할에 충실하며 개인생활을 많이 가졌다”며 “얽매이지 않고 책도 읽으며 자율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퇴임을 전후로 도내 몇몇 대학에서 초빙교수 객원교수 석좌교수 제의가 잇따랐지만 교육일선에 나가기보다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어 모두 물리쳤다고 했다.

 아주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교육관련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퇴임후 6개월 이전에는 도교육청을 찾이 않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혹시나 후임자와 도교육청 직원들이 부담스러워는 하지 않을까' 라는 배려에서 였다.

 “12년간 교육감 재직시절 유럽은 물론 중국을 통한 백두산여행도 못갔습니다. 퇴임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외국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마음이 영 편치 않아 자제했습니다. 국내경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구요.”

 퇴임때 초등학교 제자들이 200만원 상당의 해외 여행권을 선물로 줬으나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부동반으로 가까운 동남아지역이라도 다녀 올 생각이다. 가까운 곳에 산책을 나갈때도 옷 매무시를 다시 한번 가다듬는다. 시간은 자유스러웠지만 교육자로서 주위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평소 철저한 건강관리로 정평이 나 있는 김전교육감의 체력은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다.

 아침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춘천시 효자2동 도교육과학연구원 별관 테니스코트에서 8시까지 새벽운동을 한다. 멤버는 전·현직 교육계인사들과 지역사회 지인들이다. 2시간여동안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하루의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아침식사후에는 신문을 꼼꼼히 읽고 국사봉 금병산 삼악산 등 춘천 근교를 중심으로 산행에 나선다. 올 겨울 틈틈이 스키도 즐겼다. 오후에는 주로 실내골프장을 찾는다.

 “운동과 취미생활은 재임기간 공무처리시 받았던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운동은 지속적으로 해야 해요.”

 아직도 테니스 실력은 20~30대 젊은이들을 능가한다. 게임내내 파이팅이 넘쳐 흐른다. 스토로크 발리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술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는 김전교육감은 등산과 워킹을 꾸준히 하는 것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화천 산골촌놈이 대학교수, 학장에 교육감도 세번이나 했어요. 때로는 '복받은 사람' '행운아' 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행운은 아니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한 우물을 팠고 소신있게 교육철학을 펼쳐 왔기 때문이다.

 김전교육감의 고향은 화천댐 건설로 수몰이 된 화천 동촌리다. 댐건설로 인해 학교가 없어져 간동면 유촌초교를 졸업했다. 50년 춘천사범을 졸업한 후 춘천 중앙초교에서 교직을 시작했으나 더 배워야 한다는 욕심에 4년반만에 그만두고 성균관대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졸업후 도교육청 장학사로 돌아 온 그는 김동근前교육감이 2년간 장기연수 출장이라는 배려속에 서울대교육대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스승이 이영덕·정원식전국무총리다.

 대학원 졸업후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기관인 춘천교대 교수와 학장을 거쳐, 90년 제11대를 시작으로 민선 1, 2대 교육감을 역임했다.

 제1대 민선교육감 선출 당시에는 교육위원 18명의 만장일치로 당선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교육철학과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교직자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해요.”

 50여년간 변함없는 교육철학이다. 교사는 교육수요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바탕아래 전문성과 열의를 가지고 교단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1963년 교장 첫 부임지인 발산초교에서 직접 담임을 맡았다. 교대학장시절에도 교육행정을 직접 강의했다. 회의를 가면 반드시 보강을 했다. 가르치는 것 만큼 보람과 즐거움이 없으며 전문성과 실력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험을 되돌아 보면 선생님은 학생을 위한 사랑의 봉사자입니다. 지기희생을 감수하면 신뢰와 존경을 받을수 있어요.”

 일선교육계를 떠났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교육감 재임시절 가슴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90년대 초반 고교입시를 비평준화로 전환하며 춘천 원주지역 중학생들이 원하는 시내 고등학교에 대거 진학하지 못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집단 반발이 일어났다.

 김전교육감은 “영하15~영하16도의 추위속에 학부모들이 도교육청앞으로 몰려와 밤을 새우며 대책마련을 촉구할때 수요자의 희망을 다들어주지 못하는 마음에 무척 힘들었다”고 소회했다.

 하지만 재임기간동안 교육인적자원부의 5차례 평가에서 4번이나 최우수교육청으로 선정되는 전무후무한 영예를 안기도 했다.

 또 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교육풍토 조성과 도·농간의 교육격차 해소, 강원교육의 미래지향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교육환경이나 여건 등은 크게 떨어지지만 지역특성을 고려한 특색있는 교육시책을 펼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김전교육감은 “강원교육가족 모두가 저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준 결과였다”며 “교육가족들이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학생교육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재임시절 인사권자로 숱한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친구들이나 주변 친인척 만큼은 철저히 배제시켰으며 남에게 청탁도 모르고 지냈다.

 “때로는 인사와 관련해 청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퇴임하고 나니 중이 제머리 못깍는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큰아들이 대관령고랭지시험장에서 연구관으로 일하고 있으나 한번도 가까이 두지 못했어요. 미안하고 아쉬움도 있습니다만 인사때 배려좀 해달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일인 것 같아요.”

 김전교육감은 “퇴임 1년이 흐른 만큼 이제 어느 부문에서라도 강원교육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조언역할이라도 할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시간을 갖고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교육은 학교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가장 정상적입니다. 가장 주된 교육의 장은 학교이고 그다음이 가정입니다. 교사들을 존경하고 믿어야 돼요.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들이 교육의 주체입니다.”

 김전교육감은 내 자식만 위하는 가정교육과 조기교육 등 과열 열풍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학원이 결코 교육의 본질이 될 수 없다며 학교에서 바른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학부모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라줄 것을 재삼 강조했다.<金石萬기자·smkim@ 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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