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사랑의 묘약. 외뿔짐승.1

 사람은 자기 나름의 분위기를 몰고 다닙니다. 젊은 스님 한사람이 들어서자 집안이 온통 절냄새로 가득차 버렸습니다.

 해란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베개 속에 얼굴을 묻은채.

 도량 안에 서려 있는 보랏빛 그늘과 대적광전에서 번져오는 분향내가 떠올랐습니다 뻐꾹새 소리와 솔바람소리와 목탁소리와 쇠북소리가 들려오는 듯싶었습니다. 은혜사 삼층석탑 앞에 서 있는 그녀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어머니가 백팔배를 하는 동안 그녀는 탑 앞에서 자기의 그늘을 밟고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는 것은 묵산이었습니다.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머리와 가슴과 배는 말할 것 없고 온몸의 근육과 관절들이 아리고 쑤시는 듯했습니다. 문틈으로 만리향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안방에서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머니 오혜숙과 묵산 스님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스님이 내방하면 어머니는 언제든지 향을 피우고 안방으로 모시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녀의 방과 안방 사이에는 휑한 응접실 공간이 있고 원목으로 된 두 방의 출입문이 닫혀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에누리없이 우렁우렁 울려오고 있었습니다. 가끔 함께 웃기도 하고 한동안 조용해지기도 했습니다. 무얼 하느라고 조용해지는 것일까.

 묵산 스님의 얼굴이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침묵하는 산」이라는 이름의 스님이 그녀의 몸 속에 소란을 일으켜놓고 있었습니다.

 앳된 얼굴에 어리곤 하는 수줍은 듯한 웃음, 여성스러운 쌍꺼풀 눈매, 오똑한 콧날, 얄따란 입술, 유백색 살결, 약간 작은 듯하지만 강단진 몸매, 가는 듯하면서도 쨍 울리는 목소리, 새처럼 작고 부드러운 손, 숲속의 호수처럼 맑은 눈망울.

 스님은 어머니에게 참선을 가르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묵산의 은사 스님에게서 법호를 받았습니다. 화영당(花影堂), 그녀는 마음이 산란해지면서 묵산을 초청하여 법문을 듣곤 했습니다. 마음 산란이란 집안 사람들과의 관계나 종돈장의 일과의 사이에 일어난 갈등대립이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송천억의 집 비우는 일이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해란은 어머니가 못마땅했습니다.

 「이제 겨우 비구계를 받은 삼십대 초반의 스님에게서 무슨 법문을 듣는단 말인가. 그 스님에게서 얻으려는 것은 삶의 지혜에 대한 가르침이기보다는 산의 숲과 이내(嵐)같은 정령이 배어있는 깨끗하고 싱싱한 남성의 냄새 아닐까. 종돈장의 종업원 임종훈을 만나는 감정 무늬와 묵산 스님을 만나는 그것의 무늬는 어떻게 다를까. 어머니에게는 타고난 화냥기가 있다.」

 해란은 어머니와 묵산 사이의 교통 교감을 훼방놓고 싶었습니다. 묵산을 가로채고 싶었습니다. 절로 찾아가든지, 아니면 시내 어느 조용한 카페로 불러내서, 늙은 어머니보다는 자기를 더 자주 만나도록 만들어놓고 싶었습니다. 그 스님과 함께 갈대밭엘 가고 싶었습니다. 묵산은 시인 기현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윽함과 신성함이 있었습니다. 아예 묵산을 환속하게 해셔 결혼을 해버릴까. 어머니가 좋아하는 스님을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이란 것은 자기가 진실로 좋아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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