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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삼영 당선인 누구인가]교단에서 품은 꿈, 마침내 강원교육의 중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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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삼영 도교육감 당선인(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의 어린시절 어머니와 두 형과 함께 찍은 사진.

강삼영 도교육감 당선인은 2022년 교육감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실패는 그를 멈추지 못했다. 20년간 아이들과 호흡한 초등교사이자 교육의 밑그림을 그리는 행정가에서 강원교육의 새로운 수장에 오르기까지 당선인의 삶을 돌아본다.

■동해의 셋째아들 ‘삼영’=1968년 동해에서 삼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부모님의 성실한 삶은 그 자체로 본보기가 됐다. 망상초교를 졸업하고 묵호중에 진학하며 매일 기차를 타고 통학해야 했다. 도계와 태백으로 생선을 팔러 가던 아주머니들의 손등에 박힌 굳은살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 기억들은 오늘날 강 당선인의 ‘공부보다 삶이 먼저’라는 교육관에 고스란히 녹았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보듬을 수 있는 아이를 기르는 것이 그의 지향이다.

북평고를 졸업하고 춘천교대에 진학했다.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부모님의 학비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교정에 들어선 청년은 ‘참스승’의 꿈을 갖게 됐다. 교육민주화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졌다. 87학번인 그는 4학년이었지만 정부의 부당한 교원정책에 맞서 시험 거부와 동맹휴업에 동참했다. 졸업이 한 학기 늦어졌지만 ‘언제나 아이들을 중심에 둔 교사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이 마음에 박혔다.

 

강삼영 도교육감 당선인(사진 왼쪽)의 어린시절 두 형과 함께 찍은 사진.

■현장 중심 ‘교육 전문가’=1992년 교사로 임용됐다. 첫 부임지는 양구 죽리초교였다. 25살의 젊은 선생님은 기꺼이 몸을 낮춰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바다를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을 방학마다 동해 본가에 데려갔다. 삼척 고천분교 재직시절에서는 태풍 루사로 급식이 끊겨 6개월간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해먹이며 수업을 했다. 삼척 미로초교에서는 4학년 때까지 한글을 못 떼던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 졸업식에서 직접 쓴 편지를 읽게 했다. 수 십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의 얼굴이 여전히 선명하다.

이후 강 당선인은 2019년 도교육청 교원정책과장으로 본격적인 교육행정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기획조정관을 맡았는데 ‘보결전담강사’, ‘기초학력 전담교사’, ‘초등 1학년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제’ 등 정책을 직접 기획·추진했다.

강삼영 도교육감 당선인의 삼척 초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강원교육감, 두 번째 도전=2022년 1월 도교육감선거 출마를 결심했다. 3선의 민병희 전 도교육감의 후임 출마자를 찾던 때였다. 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둔 시기였지만, 민주진보 교육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출마를 선언했다. 2위로 낙선했지만 당시의 도전은 6·3지방선거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선거국면에서 민주진보진영 후보의 단일화 중요성도 깨달았고,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감 강삼영을 만든 시간들이었다.

쓰라린 패배의 기억을 안고 누구보다 바쁘게 달렸다. 강 당선인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동안 도내 18개 시·군 전역을 누비며 도민들과 만나왔고, 마지막 이틀 동안에는 다시 한번 10개 시·군을 훑는 2박3일 강행군에 나섰다. 마지막 순간까지 낮은 자세로 도민들의 선택을 기다린 그는 4년 전 보수진영에 내어준 도교육감직을 탈환하며 강원 민주진보교육감 계보를 복원하게 됐다.

강삼영 도교육감 당선인의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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