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오래전부터 국경이면서도 국경이 아니었다. 얼음이 얼면 건너갔고, 장마가 지면 떠내려왔다. 강폭보다 넓었던 것은 체제의 간극이었지만, 북한은 적어도 헌법 안에서는 그 강을 ‘민족 내부의 경계''쯤으로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김정은이 최근 손댄 새 헌법은 북쪽의 영토를 따로 못 박고, 통일이라는 문장을 도려냈다. ‘북반부''는 사라졌고 ‘조국통일''도 증발했다. 헌법은 체제의 거울이다. 거울 속 북한은 더 이상 한반도의 절반이 아니라 스스로를 완결된 국가라 선언하고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획지자웅(劃地自雄)''이라는 말이 있다. 땅에 금을 긋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모습이다. 세력이 약할수록 경계선에 집착했고, 내부가 흔들릴수록 외부를 적으로 세웠다. 북한이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도 단순한 문구 정리가 아니다. 김일성 시대의 통일 서사를 지우고 김정은 시대의 국가 서사를 새로 올리는 작업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대한민국은 주적''이라는 표현은 넣지 않았다는 점이다. 칼을 뽑아 들었지만 칼끝은 감췄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얽힌 동북아의 기압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명시하고 핵 사용 권한까지 명확히 한 부분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권이 흔들릴 때마다 교지를 새로 쓰고 호칭을 높였다. 북한 역시 선대의 후광을 덜어내는 대신 김정은 개인의 권한을 헌법 안에 새겨 넣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일 위업을 걷어낸 자리에는 핵과 국가수반이라는 단어가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민족은 뒤로 밀렸고 체제만 남았다. ▼문제는 한반도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7·4 남북공동성명도, 남북기본합의서도, 정상회담의 악수도 이제는 낡은 필름처럼 흔들린다. 분명한 것은 북한은 이제 더 이상 ‘통일을 미루는 나라''가 아니라 ‘통일을 지운 나라''가 됐다는 사실이다. 압록강 물줄기는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평양의 문장은 이미 다른 강을 건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