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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 여인의 긴 겨울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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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언니의 이름으로 85년을 살아낸 여인의 기록

◇안순자 여사 회고록 ‘한 여인의 긴 겨울 그리고 봄’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가족을 지켜낸 한 어머니의 85년 삶을 오롯이 담아낸 ‘한 여인의 긴 겨울, 그리고 봄’이 출간됐다.

‘물려받은 이름에서 피어난 인생’을 부제로 한 이 책은 1940년 평창에서 태어난 안순자 여사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은 시련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회고록이다.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평생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어머니의 애환을 큰아들(이수인 전 강원교육연구원장)이 대신 기록해 세상에 빛을 보게 했다.

저자의 유년 시절은 혹독한 ‘겨울’의 연속이었다. 본래 이름 대신 일찍 세상전 떠난 언니의 이름 ‘순자’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는, 만주 이주와 귀향길에서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을 겪어야 했다. 아홉 살에 맞이한 새어머니의 구박 속에서 정규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한 채, 10대 시절부터 남의 집 식모살이와 제사공장 노동을 하며 고단한 삶을 견뎌냈다.

하지만 거센 운명의 바람 속에서도 그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열네 살 무렵 호롱불 아래 야학당에서 글을 깨치며 삶의 희망을 붙잡았고, 열아홉 살에 시집가 척박한 산골에서 여덟 남매를 키워냈다. “자식들에게만은 가난과 배우지 못한 설움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억척스러운 일념으로 끝없는 생계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낸 것이다. 책에는 콩나물 반찬과 찐빵 등 가난 속에서도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애썼던 따뜻한 음식 이야기와, “너희가 나의 기적이었다”는 가슴 뭉클한 마지막 인사도 담겨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를 넘어, 전쟁과 가난의 시대를 살아낸 부모 세대의 뼈저린 희생과 끈질긴 희망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마침내 따뜻한 봄을 맞이한 한 여인의 삶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가족의 참된 의미와 깊은 위로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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