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은 때로 한 사람의 서사를 통해 공동체의 감정을 흔든다. 최근 WBC 아시아 예선에서 보여준 42세 베테랑 투수 노경은의 투구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젊은 투수들의 빠른 공이 경기의 속도를 지배하는 시대다. 그러나 그는 속도 대신 경험과 절제, 그리고 긴 시간 쌓아 온 감각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구속을 뛰어넘는 노련함, 상황을 읽는 침착함, 흔들리지 않는 표정은 단순한 스포츠 장면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이 축적된 결과처럼 보였다. ▼많은 팬들이 그의 이름 노경은(盧景銀)을 두고 “노(老)경(敬)은(恩)”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나이가 주는 경륜, 그 경륜을 향한 존경, 그리고 공동체에 남기는 은혜로운 감동을 동시에 담은 표현이다. 야구 팬들의 재치 있는 언어유희이지만, 그 안에는 한 인간이 시간과 싸우며 다져 온 가치에 대한 깊은 공감이 담겨 있다. 선수 생활은 짧고,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조금만 흔들려도 젊은 선수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노경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구속이 떨어지면 제구를 다듬었고, 역할이 바뀌면 그 역할에 맞게 스스로를 다시 만들었다. ▼성경에서도 인내와 꾸준함의 가치를 강조한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결실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약속이다. 마운드 위 노경은의 투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승부 이상의 메시지였다. 나이는 쇠퇴의 신호가 아니라 시간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포기하지 않는 연단이 결국 공동체에 희망을 남긴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만이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오래된 경험과 무르익은 세월의 무게에서 더 강하게 나온다. 삶에 지칠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해답이 아니라 노경은이 보여준 묵묵한 연단과 시간이 빚어낸 은혜로운 경륜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