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열어서 영상을 보려고 하면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뜨는 것들이 있다. 내 취향을 어찌나 잘 아는지, 뜨는 영상을 클릭해서 시청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러는 사이에 내 생각은 한쪽으로 쏠리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영상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내 삶과 생각은 극단적으로 쏠린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변해가는 줄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양극화가 되어 간다.
몇 년 전부터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이 뜨거운 주제로 부상했다. 우리가 오랫동안 문화적 지표로 삼아왔던 문맹률과는 다른 개념이다. 같은 단어나 문장이라 해도 어떤 문맥 속에 들어있는지에 따라, 혹은 누가 발언한 것인지, 어떤 환경 속에서 나온 것인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 위치한 것인지에 따라 그것의 의미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문해력이다. 문자 자료만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수리문해라고 해서 영수증 계산, 은행 이자율 비교, 다양한 그래프, 지도, 여러 서식을 작성하는 능력 등이 모두 포함된다.
가장 최근 자료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24년 8월에 발표한 제4차 성인문해능력조사인데, 여기에 새로 들어간 것은 디지털 문해력이다.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는 다양한 디지털 자료를 얼마나 적절하게 이해하는지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기술적 능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고, 그것의 진위(眞僞)를 판단하고, 다양한 정보를 조합하여 필요한 의미를 구성할 줄 알며, 나아가 안전하게 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처럼 문자나 그림, 서식에서 디지털 자료에 이르기까지, 텍스트를 적절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문해력이라고 한다.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우리나라 문해력은 늘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발표된 자료를 보면 20대까지의 문해력 수준은 상위권이었지만 30대 이후부터는 급격히 하락하여 50대 이후는 OECD 최하위권으로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야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고전들이 시대를 달리 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낳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텍스트가 다층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야 새로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사람들은 텍스트가 감추고 있는 수많은 주름과 지층을 탐사함으로써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서 내 삶의 이정표를 만들어 낸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정표를 만드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읽고 보고 쓰고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형성되는 문화적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토대가 튼튼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광범위하면서도 유연해진다. 내가 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요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가 있어야 세상의 다양한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런 바탕 위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을 낼 수 있다. 조화로운 사회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무식한 사람보다 책 한 권만을 깊게 읽은 사람이 위험하다고 하는 농담의 맥락은 자기 생각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내세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 준다. 유튜브가 엄청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비판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과 기준이 튼튼해야 방대한 자료 안에서 덜 헤맬 수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만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이분법적으로 경직되면서 극단적 주장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 역시 이렇게 양분되어 간다. 갈수록 문해력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높은 문해력은 문자 및 영상 텍스트만을 대상으로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 것에 진정한 힘이 있다. 갈수록 쌓이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가장 큰 힘, 바로 문해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