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칼럼]재판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정혜원 춘천지방법원 판사

새해가 되면 법원에 대한 기대와 함께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재판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이 질문 속에는 불만만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일상을 되찾고 싶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판사로서 그 마음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소중한 삶은 불안해지고, 미래에 대한 안정적인 계획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보다 재판이 늦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분쟁이 점점 늘어나고 어려워졌기 때문도 있고, 무엇보다 재판은 단순히 결론을 내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과 이유도 중요해서 소송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고, 각 주장을 충분히 경청하며, 증거를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하여 재판에서 검토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기록은 두꺼워지고, 쟁점은 세분화되었으며, 당사자들의 주장도 훨씬 정교해졌다. 판결문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사실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고, 법리는 많아지고 있다. 재판이 늦어지는 이유는 단순한 지체라기보다 성급한 판단을 피하기 위한 숙고의 시간인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역시 재판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충분히 듣지 않은 판단,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결론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재판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신뢰를 얻을 수는 없고, 법원은 신속성과 동시에 공정성에 대한 기대에도 부응해야 한다.

한편, 강원 지역에서 재판의 시간은 더욱 크게 체감된다. 넓은 지역과 긴 이동 거리, 고령 인구가 많은 현실 속에서 한 번의 재판 기일은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강원도에서의 재판은 단순히 신속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다시 오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정리된 판단이어야 한다. 신중함이 곧 효율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재판은 신속해야 한다. 그렇지만 재판의 속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반드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판결은 소송당사자에게 그 결론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만 제시되는 판단은 쉽게 오해를 낳고, 오해는 다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리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재판은 당장의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을 수는 있어도 분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만을 중요하게 여겨 판단의 신중함을 양보할 수는 없다.

결론을 내리는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절차의 예측가능성이다. 재판이 왜 이 단계에 있고, 어떠한 절차가 더 남아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기다림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다. 재판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사법은 신뢰를 잃을 것이고, 반대로 지연의 의미를 성실히 설명하는 사법은 이해의 폭을 넓힐 것이다.

새해에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신속하면서도 보다 설득력 있는 재판, 그리고 불필요한 지연은 줄이되, 필요한 숙고는 지켜내는 재판이다. 재판은 여전히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느림이 누군가의 삶을 가볍게 다루지 않기 위한 시간이라면, 사법은 그 이유를 성실히 설명해야 한다. 새해에도 법원의 판사들은 성급한 결론보다 신중한 판단을 택하며, 한 사람의 삶을 다루는 결정 앞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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