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늘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 서너 번 가본 게 고작이었다.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선 수영복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헤엄을 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그렇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백사장 주변의 얕은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게 전부였다. 좀 더 깊은 곳에 들어가려면 자동차 튜브를 빌려야만 했는데 발가락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공포가 밀려와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그게 수경조차 없었던 나의 여름 바다였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산골 마을에도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보(洑)가 마을마다 있어 헤엄 실력을 연마할 수 있었다. 어느 여름 수심이 깊은 보에서 놀다가 죽을 뻔했는데 이후 내 마음속에 물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았다. 그 공포가 나이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난해 여름 발리 옆 길리 트라왕안에 가서 알아차렸다. 호텔 수영장과 얕은 해변에서 이틀에 걸쳐 물안경에 연결된 스노클을 쓰고 수영 연습을 할 때는 자신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아, 가라앉지 않는구나. 천천히 움직여도 자연스럽게 뜨는구나. 나도 길리의 바닷속 산호 숲을 유유히 헤엄치는 바다거북을 마침내 볼 수 있겠구나. 이게 바로 장비의 힘이구나. 꿈속에서도 나는 자신만만하게 바다 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두 해 전 동해안의 작은 포구인 심곡항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뗏목 비슷한 배를 보았다. 물에 잘 뜨는 오동나무로 만들었다는 뗏목은 떼배, 가이선, 전마선이라고 불리는데 바위가 많은 심곡항 주변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때 쓰였던 배다. 창경(窓鏡)은 나무로 만든 사다리꼴 모양의 수경인데 떼배를 끌고 나가 그걸 물 위에 얹어 놓으면 바닷속 바위틈에 숨어 있는 문어, 해삼, 전복, 가자미, 미역 등등을 찾아내 갈고리나 뜰채로 건져낼 수 있다. 해녀처럼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도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데 창경바리어업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산골 촌놈의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떼배를 끌고 나가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매일 산꼭대기만 바라보던 산골 촌놈은 늘 바닷속이 궁금한 법이다. 그곳에 물고기들 말고도 다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지난해 여름 우리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막상 바다 한가운데에 도착하니 가슴이 떨렸다. 파도가 넘실거렸다. 망설임이 하얗게 끓어올랐다. 이틀 동안의 연습을 믿어 보기로 결정했다. 오리발을 신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어라, 구명조끼의 단추가 모두 풀어지네. 다시 채워도 풀어지네. 이번엔 수경 속으로 물이 들어오네. 바닥은 한참 아래여서 가라앉으면 죽을 수도 있겠네. 처음 신어본 오리발은 어떻게 해야 몸이 앞으로 나가는지 알 수가 없네...... 결국 배 주변에서 허우적거리다 다시 배로 올라갔다. 다른 이들은 서양 여인의 비키니를 따라 헤엄쳐가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두 번째 포인트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포인트에선 아예 구경만 했다. 나의 바닷속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대신 배 밑바닥에 설치해 놓은 창경 같은 흐릿한 유리를 통해 바닷속을 구경했다. 바다거북은 보이지 않았다.
떼배 한 척 없지만 창경 하나 간직하고 싶다. 한 갑자를 돌아 다시 병오년에 도착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세상의 파도 위에 떠서 흔들거린다. 아직 엄동의 겨울이지만 심곡(深谷) 바다에 나가 떼배 위에 엎드려 창경의 유리를 닦고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잃어버린 무엇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