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에서 잃은 우리의 동료, 광부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그걸 전할 책임이 있지요"
대만 신베이시 루이팡구 허우통. '고양이 마을'로 잘 알려진 허우통 마을은 탄광의 역사도 함께 품고 있는 곳이다. 대만 내 최대 석탄 생산지였던 뤠이산 광산도 이 지역에 있었다. 전성기 시절의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광부들은 여전히 이 곳을 지키고 있다. 꼭 해야할 일이 있어서다.
'허우통 광산 역사박물관'에서 퇴직 광부들과 그 자녀들이 들려주는 그 시절, 탄광촌의 이야기는 또 한번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퇴직 광부들이 사비 털어 만든 문사관=허우통 마을에 위치해 있는 '허우통 광산 역사박물관'은 80세를 훌쩍 넘긴 퇴직 광부들이 사비를 털어 엣 뤠이산 광사무소를 개조해 만든 기록관이자 교육시설이다. 2019년 은퇴한 광부 4명이 의기투합해 건립을 시작했고 이후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18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박물관 건립을 주도한 저우 차우난(82) 관장은 "전국적으로 약 4만명 정도의 광부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사망자가 6,500명"이라며 "탄광에서 일어난 광부들의 죽음은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박물관을 건립한 가장 큰 이유는 탄광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기록물과 사진, 장비를 전시하고, 광부들이 어떻게 석탄을 캐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하고 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역사를 전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물관 건립에 필요한 예산은 모두 이들 퇴직 광부들이 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옛 광산 사무실을 개조해 전시관 및 교육실로 만들었고, 필요한 물품들을 직접 공수해왔다. 박물관 곳곳 어느 한 군데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설립 후 5년간은 운영비까지 모두 스스로 부담했지만 현재는 사회적 가치와 그 필요성을 인정받아 국가에서 박물관 임차료와 세금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 은퇴한 광부들이 들려주는 탄광 이야기···생생한 역사 교육현장=이 곳에서 일하는 20여명의 직원들은 모두 은퇴한 광부 또는 광부들의 자녀들이다. 대부분 박물관에서 가까운 마을에 거주하며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 박물관에 출근해 봉사활동을 한다.
가장 큰 업무는 해설이다. 박물관 내에 조성된 전시장을 돌며 광부들이 썼던 장비들을 소개하고, 어떻게 채굴이 이뤄졌는지 등 탄광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주 고객은 학생들이다. 학급 단위로 교육을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탄광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과 학자들도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학생들은 무료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이른바 '광부 도시락'도 제공해준다.
뤠이산 광업정탄공장과 박물관, 광부숙소 등 탄광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허우통 마을을 따라 도는 3시간짜리 탄광 교육 투어가 가장 인기이다. 생생한 역사 교육의 현장인 셈이다.
■ 수익 없어도 알리는게 큰 보람···'기록'이 가장 중요=박물관은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다. 무료로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고 필요한 부분은 지자체나 국가에 요청해 해결한다. 개관 후 지난해까지 집계한 방문객 수는 2만명 수준으로 아주 많은 인원은 아니다.
마오 첸 페이((77)씨는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며 "광부의 삶을 전할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이 조성됐으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폐광을 앞둔 한국에 이들은 '기록'의 중요성을 전했다.
저우 차우난 관장은 "박물관을 만들려고 보니 갖고 있는 기록물이 너무 부족했다"며 "탄광의 여러 유산을 지금부터 잘 보존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물관 직원들은 박물관 건립 과정을 담은 책과 함께 광부들의 수기를 담은 책도 제작했다.
저우 관장은 "한국과 대만은 탄광의 역사를 함께 했다. 과거에는 교류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중단됐다. 다시 교류를 재개해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이를 이어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