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마약

자연은 속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속고 또 속는다. 누군가는 바다를 품은 항구에 순진한 풍경만을 기대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깊은 산중에서 피어난 맑은 공기만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강원자치도는 그 믿음을 시험받고 있다. 1,988㎏. 숫자로는 그 무게를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이는 한 도시를 마비시키고도 남을 양이다. 코카인의 물결이 옥계항에 밀려든 그 순간, 강원은 더 이상 마약의 변두리가 아니었다. ▼‘마약 청정지대’란 말은 이제 헛된 수식에 불과하다. 예부터 ‘탐화시어필(貪花是魚餌), 탐주시인망(貪酒是人亡)’이라 했듯, 탐욕은 미끼가 되고 쾌락은 망각의 지름길이 된다. 최근 5년간 도에서만 2,974명의 마약사범이 적발됐다는 통계는 단지 법의 작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깊숙이 스며든 병리의 징후다. 강릉, 횡성, 동해를 잇는 마약 범죄의 실루엣은 국경 너머의 조직 범죄가 도를 중간 기착지로 삼았음을 입증한다. 뿌리는 밖에서 왔지만, 줄기와 잎은 이곳에 내렸다. ▼더 뿌리 깊은 문제는 내부다. 외부의 손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무감각이다. 강원도도 예외 없이 SNS를 통한 마약 유통의 경로가 활짝 열려 있고,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은폐 기술이 청소년을 유혹한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위험은 시작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멀리만 본다. 청년과 청소년, 그들의 피부 가까이에 있는 위험을 어른들은 아직도 막연히 ‘타인의 일탈’쯤으로 치부하고 있지 않은가. ▼마약은 사회 해체의 신호다. 지역경제, 교육, 공동체 의식은 마약 앞에서 무력하다. 그래서 마약과의 싸움은 단지 검거의 문제가 아니다. 항구의 검색대를 늘리고, 외국인 선원의 이력까지 추적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도민 스스로의 감시와 각성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곧 다가올 관광 성수기, 청정 이미지를 찾아오는 발길 앞에 우리는 어떤 현실을 내보일 것인가. 도민 전체가 ‘내 일’로 여기는 순간, 마약은 설 자리를 잃는다.

강원의 역사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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