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춘추칼럼]종소리가 외치는 삶의 우선순위

오덕성 우송대 총장

지난달 모교에서 고위정책 과정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모교의 복도를 천천히 걷다 보니 장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학생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1970년대 초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토계획과 환경정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학자들이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남성, 여성의 평균수명은 각각 80.6세, 86.4세이다. 인생 2라운드를 사는 필자도 새삼 ‘세월이 참 빠르구나’ 생각을 하면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천문시계 ‘사도들의 행진’을 본 적이 있다. 그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4개의 조각상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조각상이 종을 울리는 줄을 당기면, 그 옆에 있는 ‘탐욕’, ‘허영’, ‘쾌락’을 상징하는 세 조각상이 나와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장면이다. 죽음을 경고하는 종소리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욕심에 집착하는 모습이 필자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도 시계탑에 있는 네 개의 조각상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건강,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행동 등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눈앞에 있는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종소리는 ‘너의 삶의 우선순위를 정리해라’라는 충고의 말처럼 필자의 가슴을 두드렸다.

일단 내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적절히 관리하며 의미 있게 사용하는 지혜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건강한 생각으로 시작하고 작은 일이라도 시간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집중하고 난 후 휴식하며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지만 ‘오늘 하루를 잘 보냈어!’ 하는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고 싶다.

또 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지금까지는 나 중심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아내, 가족, 친구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배려해야 할 시간이 왔다. ‘내가 좋으면 그들도 좋은 것’이라는 일방적 행동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마지막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일이다. 읽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무의미한 교제 등 욕망으로 끌어안고 있던 짐들을 하나하나 덜어내야겠다. 정작 필요하지 않지만 언젠가 쓰겠지 하고 쟁여놓았던 물건,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했던 관계, 나의 경직된 프레임으로 만들어 놓은 고민들. 훌훌 버려야 진정 자유롭고 가벼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남은 하루는 의미 없게 낭비하는 1년보다 훨씬 귀하다.’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가 해준 말이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가슴 깊이 남아 있다. 삶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기에 매일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에서의 기억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마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한자리에서 마주한 듯한 시간이었고, 그 속에서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프라하 천문시계 조각상처럼 내게 들리는 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일상을 돌이켜보며 정돈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매일의 일상을 보내면서 유한한 인생임을 자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정돈하는 그 시간. 즉, ‘삶의 우선순위’를 정돈하며 지혜롭게 살아가고자 한다.

지선 1년 앞으로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