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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런치플레이션’

◇일러스트=조남원 기자

‘점심 한 끼가 무섭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시대다. 냉면 한 그릇에 1만원이 넘고, 김밥조차도 서민 음식이 아닌 지경이다. 외식 42개 품목 중 36개가 줄줄이 가격이 오른 강원자치도의 풍경은 그 자체로 물가의 체온계를 보여준다. 생활 밀착형 식사비가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빠르게 인상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다. 밥값이 오른다는 것은 곧 사람들의 시간과 여유, 그리고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점심은 이제 ‘한 끼’가 아니라 ‘한숨’이 됐다. ▼고려 말, 권문세족들은 백성의 곡식을 독점해 밥값을 부풀렸다. 백성들은 굶주렸고, 도적 떼가 들끓었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축산물과 수산물은 20% 가까이 뛰었고, 냉면은 마침내 1만원 고지를 돌파했다. 햄버거와 도시락, 김밥까지 모두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 물가 곡선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은 기후변화, 환율, 그리고 인건비라지만, 정작 소비자는 이 모든 외부 요인의 청구서를 ‘점심값’이라는 이름으로 떠안는다. 임금은 찔끔 오르고, 물가는 휘몰아치듯 치솟는 이 모순의 식탁에서 먹는 일은 생존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현실은 ‘절식이 미덕’이 아닌 ‘절식이 생존’이 되어가는 중이다. 구내 식당이 문을 닫자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우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결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들 또한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식자재 단가와 인건비는 올라가고, 소비자 반응은 싸늘하니 ‘올려도 문제, 안 올려도 문제’다. 장사꾼이라기보다 줄타기 곡예사에 가깝다. ▼외식 물가 안정 대책이 논의된다지만, 땜질식 처방으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뿐이다. 외식업계의 고충과 소비자의 부담이 서로를 향한 원망으로 번지기 전에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 ‘밥이 하늘’이라던 옛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밥값의 공정성은 곧 삶의 존엄과 직결된다. 런치플레이션은 단순한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인의 존엄이 무너지는 조용한 붕괴이며, 침묵 속의 항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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