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속화된 시대, 오히려 ‘느리게 걷는 여행’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다. 우리나라 역시 제주 올레길의 성공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걷기 좋은 길을 발굴하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2년 걷기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걷는 길은 동해안의 해파랑길, 제주 올레길, 부산 갈맷길, 남해안 남파랑길, 서해안 서해랑길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걷기여행의 53.3%가 숙박여행이라는 점이다. 이는 곧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져 지역 내 활동과 소비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걷기는 사색과 수행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자연, 역사문화, 휴식, 레저 등 복합적인 가치를 담은 여행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역시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걷기여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강원형 걷기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강원형 걷기여행 ‘샷건 트레킹’의 시작과 진화=2023년 강원특별자치도의 출범과 함께 강원관광재단은 18개 시·군이 다 함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프로젝트로 ‘샷건 트레킹’을 선보였다. 각 시군을 대표하는 길을 선정해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걷기행사도 진행했다.
2023년 양구 호수섬길, 홍천 수타사 산소길, 춘천 실레이야기길, 평창 바위공원길, 강릉 바우길 5구간에서 행사를 진행하며 자연 속에서의 걷기와 지역 특산품 판매, 지역화폐 활용 등 체류형 소비 유도 모델이 병행됐다. 2024년에는 보다 내실 있는 운영을 기반으로 인제 소양강 둘레길, 동해 해파랑길, 횡성 호수길 등에서 일반 걷기 프로그램을, 춘천 물깨말구구리길과 속초 영랑호 사잇길에서는 맨발걷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특히 예약제 참가비 제도를 도입해 무분별한 노쇼를 방지하고, 참가자에게는 지역 특산품, 기념품 등을 제공해 지역 소상공인 매출 증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그 밖에 ESG 실천을 위해 플로깅 및 친환경 실천행동 홍보부스도 운영했다. 또 다 함께 걷는 행사에 참여가 어렵거나 18개 전체 코스를 걷고자 하는 분들에게 동기부여를 위해 걷기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한 샷건 인증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23년에 걷기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면, 2024년에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관광사업으로 발돋움했다. 한편으로는 강원만의 지속 가능한 걷기 여행 콘텐츠 개발이라는 숙제를 받았다.
■지속 가능한 걷기여행의 조건과 실천=2025년 강원특별자치도 걷기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나 여가의 차원을 넘어 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되고 지역과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자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첫째, 지역경제와의 연계다. 걷기 코스에 전통시장 또는 지역 상권을 연결, 걷기 후 자연스럽게 소비가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고성 응봉길, 화천 붕어섬길, 양양 남대천 르네상스길, 영월 여행길은 모두 길과 시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다. 특히 지난 5월, 횡성 호수길 축제와 함께 진행된 ‘오감 트레킹’은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진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행사에 함께한 축제위원장은 “강원관광재단이 프로그램을 함께 해줘 축제에 활기가 더해졌다”고 소감을 전했고, 행사장에서 먹거리 부스를 운영한 새마을 부녀회 관계자는 “비 때문에 걱정했지만, 트레킹 참가자들이 많이 찾아줘 매출이 기대 이상이었다” 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둘째, 환경을 고려한 친환경 운영이다. 기후위기가 전 지구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강원자치도는 저탄소 걷기여행 모델을 실천하고 있다. 지역 행사 시 자가용 이용을 최소화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준비 중이며, 개별 인증 프로그램에서는 이동수단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행동에 대한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셋째, 트렌드와 건강을 반영한 콘텐츠 확장이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달리기가 새로운 여가문화로 자리 잡는 만큼, 2025년에는 연간 4회의 걷기 프로그램 중 1회를 러닝 행사로 기획해 다양한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프로그램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강원형 걷기여행’은 사람·지역·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관광의 형태로 도전하고 실현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