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4·3사건의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정을 담은 1만4천673건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제주도는 제221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11일 오전 6시 5분(프랑스 현지시간 10일 오후 11시 5분),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2023년 11월 제출한 등재신청서는 유네스코 등재심사소위원회(RSC)와 국제자문위원회(IAC)의 등재권고를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집행이사회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이 7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됐다.
제주4·3기록물은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정을 담은 1만4천673건의 역사적 기록을 담고 있다.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27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1만 4,601건),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운동 기록(42건),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3건)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문서 1만3천976건, 도서 19건, 엽서 25건, 소책자 20건, 비문 1건, 비디오 538건, 오디오 94건이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제주4·3기록물의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 보편적 중요성을 인정했다.


국제자문위원회에서는 제주4·3기록물에 대해 "국가폭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사회적 화해를 이뤄내며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조명한다"며 "화해와 상생을 향한 지역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 이룬 성과"라고 높이 평가했다.
제주도는 이번 등재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무형문화유산, 여기에 세계기록유산까지 더해져 '유네스코 5관왕'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4·3의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을 이뤄낸 제주도민의 역사적 여정이 세계의 유산이 된 뜻깊은 순간"이라며 "이번 등재를 계기로 제주4·3이 담고 있는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전 세계와 함께 나누겠다"고 강조했다.
오 지사는 이어 "4·3 관련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하고, 이를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인권 교육의 살아있는 자료로 활용하겠다"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서는 등재를 기념하는 '제주4·3 아카이브(ARCHIVES): 진실과 화해'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제주도는 앞으로 등재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관련 전시, 학술행사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앞서 1999년 9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4·3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추미애 의원은 4·3 당시 체포돼 군법회의에 회부된 이들의 명단이 수록된 수형인 명부를 공개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돼있던 이 명부에는 1948년부터 1949년 사이 불법 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 또는 사형 선고를 받은 민간인 2천530명의 명단과 인적 사항 등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됐으며, 대부분 한국전쟁 발발 직후 형무소 재소자 학살 등으로 인해 행방불명됐다.
당시 재판이 판결문과 재판 조서, 변호인 등 기본적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불법적인 재판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2007년 정부 4·3위원회는 수형자를 희생자에 포함하는 결정을 했다.
이 명부는 훗날 재심을 통한 수형인 명예회복에 중요한 자료가 됐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4·3도민연대)는 수형인 명부에 기록된 2천350명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 생존 수형인들을 찾아 나섰다.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이들은 뒤늦게나마 전과자 낙인을 벗고 싶어 했다. 그렇게 생존 수형인 18명이 2017년 4월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르렀고, 2018년 9월 재심 결정이 내려졌으며, 2019년 1월 17일 무죄를 의미하는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이후 행방불명된 수형인 유족들의 재심 청구가 이어졌으며, 법무부는 광주고검 산하에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을 설치해 4·3 수형인에 대한 직권 재심 청구에 나서고 법원도 제주지법에 4·3 전담 재판부를 설치해 뒤늦게나마 명예 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