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그리며 폭넓은 사회적 반향과 공감대를 일으켰다. 그러나 극 중 주인공 문동은은 끝내 법적 절차에 기대지 않는다. 스스로 계획한 ‘복수’를 실행할 뿐이다. ‘더 글로리’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반향은, ‘피해자가 믿고 설 수 있는 법정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024. 2. 22. 개정되어 같은 해 3. 1.부터 시행된 개정 ‘행정소송규칙’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고, ‘행정소송규칙’은 ‘더 글로리’가 던지는 질문에 작지만 분명한 답을 던진다. 위 규칙은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행정청의 조치에 불복하여 집행정지를 신청할 경우, 행정심판위원회나 법원은 집행정지 결정을 하기 전에는 피해학생 또는 그 보호자(이하 ‘피해학생등’이라 한다)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정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것이다. 기존에는 가해학생이 집행정지신청 등을 통하여 조치의 부당성을 다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반면, 피해학생이 절차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특히 가해학생이 학교 복귀를 시도하는 경우,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이 처분의 부당성을 다투는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채 다시 같은 공간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번 개정은 피해학생을 ‘절차의 객체’에서 ‘주체’로 격상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법원은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조치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사건이 접수되면, 심문기일을 지정하여 피해학생등에게 심문기일을 통지하면서 그 기일에 출석하여 진술하거나, 해당 사건에 대한 의견 등을 기재한 서면을 제출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하여 피해학생등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행정소송규칙 제10조의2 제1, 3, 6항). 이를 위하여 행정청에 피해학생등의 의견진술 관련 의사, 연락처 등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같은 조 제2항).
물론 일정한 예외도 규정되어 있다. 피해학생등이 명시적으로 의견진술 기회를 포기하였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심문기일에 불출석하거나 의견의 진술을 갈음하는 의견서를 제출하지 아니하는 경우 등에는 의견청취를 생략할 수 있다(같은 조 제8항). 이는 피해학생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한편, 절차의 효율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피해학생등이 심문기일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는 경우에도 가해학생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 가해학생의 보복에 대한 우려 등으로 진술을 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개정 행정소송규칙은 필요한 경우에는 가해학생이나 그 보호자를 퇴정시키거나 가림시설 등을 설치하도록 하고(같은 조 제5항), 당사자나 소송관계인이 청취한 피해학생등의 의견을 이용하여 명예 또는 생활의 평온을 해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같은 조 제9항).
이와 같은 행정소송규칙의 내용은 단순히 ‘말할 기회’를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피해학생은 가해학생과 다시 같은 공간에 서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말할 기회를 부여받고 법원은 이에 귀를 기울인다. 이는 피해자의 현실이 법원의 판단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로 진입한 것으로서,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절차적 정의의 실현에 기여한다.
‘더 글로리’는 허구의 이야기지만, 현실의 제도는 피해자가 사적 복수 대신 정의를 택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2024년의 행정소송규칙 개정은 그 변화의 출발점 중 하나이고, 우리의 법정은 피해자에게 절차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씩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