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권력놀음에 빠진 정치, 국민만 나라 걱정

유학렬 횡성주재 국장

‘슈퍼 울트라 사법 위크(Week)’

아주 ‘특별한 한주’의 시작이다. 민주 국가에서 이렇게 법적인 빅 이벤트가 겹치긴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24일 국무총리 탄핵 심판을 하고, 고등법원이 야당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를 오는 26일 내린다. 국민을 둘로 나눈 대통령 탄핵 심판도 오는 28일이 유력하단다.
국민을 돌봐야 할 정치 영역이 법에 걸려 사법부에 목을 메고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 1년여만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자 정국이 격랑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치 1번지인 여의도는 ‘역대급’ 거대 야권과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지킨 ‘절대 열세’ 여당으로 불안이 잉태됐다.

교수 슬하에 태어나 최고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평생 검사로 지내다 검찰총장이 된 후 여의도 정치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으로 ‘직행’한 권력자와 어려운 가정 형편에 정상적인 학교 교육마저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환경을 극복하고 검정고시와 사법시험 합격으로 인생 역전을 일궈낸 야당 대표의 ‘직진’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의 형국을 만들었다.

자기 앞의 장애물은 무조건 부수고, 제압하고, 뛰어 넘어야 할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극과 극’의 인생 궤적을 삶을 살아 온 두 인물로 인해, 선택해야 할 국민들도 ‘극우와 극좌’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보수나 진보가 아닌 중도라고 하면 별 볼 일 없고, 개념없는 부류로 치부되는 분위기마저 팽배해졌다.

거대 야당과 야당 대표를 국정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보다 소신을 앞세운 최고 권력자와 그런 권력자의 손발을 묶으려 줄탄핵, 특검, 예산삭감을 남발한 의회 권력의 격돌은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이다.

급기야 상황은 터졌고, 국민과 국익은 아랑곳 하지 않은채 자기 진영의 생존만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야당 대표가 “우리 지지층이 상대쪽 보다 더 학력, 소득이 높다”며 은근히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비하했다.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천신만고 끝에 풀려 낸 권력자도 “지지와 성원에 감사”라며 한쪽만 바라보는 뉘앙스를 남겼다.

민주화 운동이 최고조였던 80년대를 시위 현장에서 겪은 세대들은, 아직도 주변에 민주나 진보를 얘기해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양 착각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방향성 없는 진보, 진영의 이익과 권력욕에 눈먼 행태는 이제 너무 고리타분하다.

투표지는 종잇장에 불과하고 계량의 척도이다. 하지만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는 수많은 고뇌를 거쳐 신성한 권리를 수행했다. 그 수고로움을 후보자의 그것에 비해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대선에서 여당 후보는 1,639만 4,815표를 얻었다. 득표율 48.56%로, 야당 후보 47.83%보다 0.73% 앞섰다. 24만 7,077표 차로 당락이 결정됐다. 숫자상으로 초박빙이다.

하지만 1,639만 4,815표는 단순한 투표지, 종잇장이 아니다. 단순히 보면 대통령 자리는 현행 선거제도에서 가장 많은 국민들의 표를 얻은 정치인이다.

대통령과 거대 야당의 대치에 국민은 좌불안석이다. 대권과 국회 권력을 몰아줬더니 자기 진영 챙기기에 혈안이 됐던게 엊그제다.

다수결의 모순을 인정하고 관용을 베풀어 협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걸핏하면 국민을 팔아 자기 모순을 정당화하는 정치는 뿌리 뽑아야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협력, 소수와 약자에 대한 배려, 사대(事大)와 포용이 우리 공동체의 기본 시스템으로 정착돼야 한다. 아첨과 아부를 일삼는 사대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탄핵을 통해 권력이 반복적으로 바뀌는 건 국민의 불행이다.

역사는 흐른다.

이유야 어찌됐든 기대와 희망을 갖고 내 손으로 뽑은 권력이 ‘실패’ 했을때 좌절과 분노는 고스란히 표를 찍어준 개개인의 몫이다.

이번 정권을 탄생시킨 ‘표(票)’들이 벼르고 있는 미래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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