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유네스코 등재 20주년…강릉단오제의 기억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강릉단오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1977대 강릉단오제 관노가면극 모습. 강원일보 DB

올해는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가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ICCN) 총회가 오는 5월 강릉에서 열릴 예정이다. 2005년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등재는, 강릉단오제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축제로 도약하는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할 수 있다.

강릉단오제의 기원은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관령을 중심 공간으로 삼고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의 김유신 장군, 고려 건국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강릉 출신의 승려 범일국사, 자연재해와 고난의 희생자였던 여인을 지역수호신으로 모시며 영동지역 주민들의 공동체의식을 고양하는 축제로 전승되고 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더욱 체계화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강릉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전통 의례와 연희가 추가되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됐다.

유교식 제의와 무당굿의 종교적 의례를 기반으로 한 강릉단오제는 가면극과 단오민속놀이, 난장(亂場)이 합쳐진 전통 축제다. 축제는 음력 4월 5일 신주 빚기로 시작해 음력 4월 대관령에서 국사성황신을 맞이하는 영신제를 거쳐, 음력 5월 강릉 시내 일대를 중심으로 단오행사가 펼쳐진다. 이후 국사성황신 송신제와 소제(燒祭)로 마무리되며, 이 과정에서 전통 신앙과 민속놀이가 조화를 이루며 독창적인 축제의 형태를 갖춘다.

◇1976년 5월 단오제에서 그네뛰기를 하며 단오제를 즐기는 주부와 구경꾼들. 강원일보 DB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높은 날’ 또는 ‘신날’이라는 뜻의 수릿날이라 불린다. 강릉단오제는 양기의 숫자 5가 두 번 겹치는 음력 5월 5일의 전통을 계승한 축제다. 본래 단오는 보리를 수확하고 모심기가 끝난 후 한바탕 놀면서 쉬는 명절로서 농경사회에서 풍농을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전통은 강릉 지역에서 더욱 발전하여, 단순한 제례를 넘어 전통과 예술, 공동체 문화를 포괄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강릉단오제는 한국의 전통과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대표적인 축제다. 1960~70년대만 해도 강릉단오제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준비하는, 마을 전체가 하나가 되는 축제였다. 단오장(場)에는 오색 천막이 쳐졌고, 농악대가 흥을 돋우면 장터는 활기로 넘쳤다. 씨름판에는 동네 장사들이 모여 기량을 겨뤘고, 아이들은 그네뛰기와 널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한 해의 건강을 기원했다. 단오굿을 집전하는 무당의 나지막한 목소리, 국사성황제에서 제관들이 읊조리는 기원문,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강릉단오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문화유산이었다.

◇1978년 강릉단오제에서 펼쳐진 씨름경기 모습. 강원일보 DB

강릉단오제의 핵심은 단순한 놀이문화가 아니라, 신에게 예를 올리는 전통 의례에 있다. 대관령 산신제와 국사성황제는 단오제의 근간을 이루는 행사로, 지역 공동체가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한 제례다. 이러한 의례는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오며 강릉의 정신문화적 유산을 형성해 왔다. 단오굿은 단순한 무속 의식이 아니라 강릉 지역 주민들의 삶과 희망을 담은 문화적 표현이며,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한다. 특히 관노가면극은 강릉단오제에서 가장 독창적인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조선시대 관청의 노비들이 양반 계층을 풍자하며 연희하던 이 가면극은 신분제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민중이 웃음을 통해 저항하고 해학을 펼칠 수 있었던 귀중한 전통극이다. 오늘날에도 관노가면극은 강릉단오제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 전통 연극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릉단오제에서는 다양한 전통 연희행사도 펼쳐진다. 학산오독떼기는 강릉의 농촌에서 전승된 노동요로, 농사일을 하며 부르던 노래를 재현하는 공연이다. 강릉농악은 역동적인 가락과 힘찬 퍼포먼스로 단오제의 흥을 돋우며, 사물놀이와 함께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전통 농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한, 강릉 사천하평답교놀이는 마을 주민들이 다리를 건너며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행사로,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함께 즐기는 강릉만의 독특한 전통놀이로 자리 잡고 있다. 단오장에는 솜사탕과 뽑기 가게가 줄지어 섰고, 어른들은 막걸리 한 사발을 기울이며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LED 조명은 없었지만, 동네 어귀마다 울려 퍼지는 꽹과리 소리만으로도 축제 분위기는 충분했다. 장터 한쪽에서는 마을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수리취떡과 다식이 놓여 있었고, 아이들은 몇 푼을 쥐여주면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1930년대 강릉단오제에 참여한 농악단 모습. 강원일보 DB

강릉단오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단오굿과 관노가면극은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라 세계인이 주목하는 전통예술로 자리 잡았고, 강릉단오제는 이제 강원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축제로 발전했다. 매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으며, 한국의 전통을 체험하고 배우는 장이 되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한국의 역사와 정서를 담고, 세대를 이어 전승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올해 유네스코 등재 20주년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축제로서 강릉단오제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고 미래 세대에게 전승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