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봉채에 진주를 박은 국화잠이 쪽머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유연한 두 어깨, 물결처럼 부드럽게 잡힌 치마의 주름, 그의 아름다움은 그의 권위요 아집이요 숙명이다. 그의 아름다움과 위엄과 집념은 그의 고독이다.”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 속 주인공 서희는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한(恨)을 한껏 품은 비운의 여인이었다. 가슴 깊이 박힌 증오심에 날카로운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입체적인 캐릭터로 표현된다.
원주 단구동에 있는 ‘카페 서희’에서 만나는 밀크슈페너 ‘서희’는 소설 속 서희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메밀을 냉침한 고소한 우유와 쑥향 가득한 부드러운 크림을 얹은 밀크슈페너 ‘서희’ 한 잔에 다양한 맛이 숨어 있다.
군고구마 라테 ‘토지’는 묵직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달콤한 군고구마 우유에 쫀득한 커피크림을 올려 풍미를 더한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광복으로 귀결된다. 뿔뿔이 흩어져도 내 땅으로 돌아가고픈 간절한 소망은 단 한 줄로 표현된다.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
광복의 소식은 서희에게도 전해진다.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고 땅바닥에 주저앉은 서희가 속삭이듯 묻는다. “정말이냐....” 서희에게 광복은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심정을 갖게 해주는 동력이었다.
감격의 순간이다. 카페 서희에서 만나는 아이스티 ‘광복’은 새콤달콤한 복분자에 레몬의 상큼함을 더한 한국적인 맛을 느끼게 해준다. 광복의 짜릿한 순간이 광복 아이스티 한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청량감을 전해주기에는 충분하다.
카페 서희는 원주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을 거닐다 보면 만나는 공간이다. 기존 북카페를 ‘서희’라는 이름의 카페로 리모델링하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카페 서희’임을 알려주는 간판 로고에는 치악산 자락이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자태를 보여준다. 이 곳은 우리나라 대표 공간설계전문가로 꼽히는 유정수 더 글로우 서울 대표와의 협업으로 조성됐다.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면서 원주지역 명소로 급부상했다. 앞서 언급한 시그니처 메뉴를 통해 소설 토지의 감동을 음미해 보는 것이 일품이다. 여기에 방아꽃차, 볶은 우엉차, 기정떡 등 다양한 메뉴가 색을 더하는 느낌이다.
서희 카페는 계단을 타고 올라 마주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물과 하늘 사이에 떠있는 대지를 형상화한 조형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박경리 작가의 생명사상을 오롯이 품은 작품으로 질긴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카페 2층 창밖으로 보이는 박경리문학공원의 고즈넉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카페 책장 곳곳에 비치된 박경리 소설과 함께 차 한 잔의 여유를 보다 풍요롭게 누릴 수 있다.
카페를 나와 공원을 거닐다 보면 박경리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보다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작가가 거주했던 옛집과 정원은 물론, 평사리 마당과 홍아동산, 용두레벌까지 소설 토지 속 배경을 담은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서희가 되고 길상이 된다.
기나긴 일제강점기의 끝에는 광복의 기쁨이 오듯, 동장군을 기어코 이겨낸 봄 내음이 솔솔 풍기는 계절이다. 카페 서희에서 서희와 토지, 광복의 기쁨을 누리며 박경리문학공원을 거닐어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