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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고성에 알프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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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2월, 제60회 전국체육대회 동계스키대회가 열린 고성 알프스 스키장에서 선수들이 알록달록한 스키복을 갖춰 입고 밝은 모습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강원일보DB

1979년 2월 24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 해발 1,052m의 진부령 정상에 위치한 국내 최북단 ‘알프스 스키장’에서 제60회 전국체육대회 동계스키대회가 열렸다. 전국체전 스키대회는 1948년 서울 광장리(성동구 광장동) 아차산 슬로프에서 열린 것을 시작으로 울릉도(1949년)와 대관령(1950년)으로 옮겨서 개최됐다. 1950~70년대까지 주로 대관령 스키장에서 열리던 스키대회는 1975년부터 적설량이 풍부한 알프스 스키장으로 옮겨서 진행됐다.

IOC 위원을 역임하기도 한 제25대 박종규 대한체육회장이 취임 한 이후 체육회가 치른 첫 행사였던 만큼 많은 관심이 쏠린 대회였다. 당시 알프스 스키장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설경이었다. 깊은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스키 코스는 유려한 곡선을 그렸고, 낮은 키의 소나무들은 하얀 눈 속에서도 짙은 초록빛을 발하며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은 눈밭 속에 포근히 자리 잡아,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60회 전국체육대회 동계스키대회 개회식 모습. 대회 참가 선수들이 등번호를 단 채 대한체육회 관계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강원일보 DB

사흘간 열린 대회는 알파인과 노르딕 종목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빠른 속도를 겨루는 알파인 경기는 1.2km 코스의 마산봉 슬로프에서 진행됐고, 스키의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노르딕 경기는 40km에 달하는 진부령 코스에서 치러졌다. 대회 직전까지도 많은 눈이 내려 2m 가까운 풍부한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자연설이 난감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눈이 계속해서 쏟아지면서 교통이 두절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회 개막 전날(23일) 이종갑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원통에서 발이 묶여 대회본부인 알프스산장까지 도보로 이동하려고 하다 길을 잃었다가, 군인들에 의해 발견 겨우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폭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듬해인 1980년 제61회 스키대회는 적설량 부족으로 대회가 취소됐다.

개막식은 박찬욱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의 개회선언에 이어 전날 폭설로 큰 일을 당할 뻔 한 이종갑 부회장은 당부의 말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자연적 조건이 불리하고 시설이 충분하지 못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스키인들은 인내와 자신감을 갖고 경기력 향상에 열의를 다해 세계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라”는 이 부회장의 인사말 속에는 그가 겪은 고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 했다. 선수대표 선서는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황병대 선수가 담당했다.

◇제60회 전국체육대회 동계스키대회에 참가한 어린 선수가 깃발 사이를 민첩하게 통과하며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다. 강원일보 DB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대회는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헬멧이나 무릎 보호대 등 안전장비는 물론이고 변변한 스키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비지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빨간색 번호를 스키복 앞 뒤에 달고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하얀 설원을 가르는 모습은 그래서 더 장관으로 다가왔다.

사흘간의 열전을 마무리 한 이 대회에서는 모두 3명의 4관왕이 탄생했다. 강릉농공고 소속 홍인기 선수가 활강에서 2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남고부 3관왕을 차지하는 등 관동대, 강릉농공고, 강릉상고, 강릉여고, 도암중, 주문진 초교 등에서 출전한 강원도 출신이 선수들이 거의 모든 종목을 휩쓸었다.

이제는 역사 속 기록으로 남은 1979년의 고성 알프스 스키장에서의 기억들. 그날의 설원 위를 가로지르던 스키 선수들의 흔적은 여전히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겨울의 고성, 알프스 스키장에서 펼쳐진 이 동계체전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한겨울의 차가움을 녹이는 따뜻한 추억을 남긴, 한 시대의 열정을 담은 이야기로 기억되고 있다.

1981년 제62회 스키대회 부터는 현대적 스키장시설을 갖춘 용평스키장에서 대회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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