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트로트 가수 송대관 심장마비로 별세…향년 79세

무명 생활하다 노랫말처럼 '쨍하고' 성공…"내 신조는 인조이 마이 라이프"
'네박자' '유행가' '차표 한장' 히트…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트로트 사대천왕

◇가수 송대관[연합뉴스 자료 사진]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곡 '해뜰날'로 큰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향년 79세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의 유족과 소속사 스타라인업엔터테인먼트 등에 따르면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지만 수년 간 무명 생활을 거쳤다. 이후 1970년 '당신은 떠났어도'와 1971년 '세월이 약이겠지요'로 이름을 알렸고, 1975년 '해뜰날'이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해뜰날'은 마치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경제 개발 시대에 딱 맞는 주제가처럼 울려 퍼졌다"며 "이 노래 때문에 '쨍'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다"고 말했다.

송대관은 미국 이민을 떠났다가 1980년대 후반 귀국해 1990년대 이후에도 신나고 구수한 멜로디를 앞세워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며 트로트계 레전드로 자리잡았다.

그는 수년 전 암 투병을 했고, 이후 이런저런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몸이 쇠약해진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최근까지 '가요무대' 등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08년에는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에 취임해 가수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기도 했다.

송대관은 과거 인터뷰에서 "내 신조가 '인조이 마이 라이프'(Enjoy My Life)다. 재방송 없는 인생인데, 열심히 살아도 늘 부족하다"며 "그러나 지금 부족한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작사·작곡가, 연주인, 제작자, 방송인 등 모두가 힘을 합쳐 나아가다 보면 보다 밝은 내일이 반드시 온다"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드러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송대관은 '해뜰날' 등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 준 가수"라며 "1980년대 이후 현철, 설운도, 태진아와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리며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일궈냈다"고 평했다.

KBS '가요무대' 최헌 작가는 통화에서 "원래 다음 주 고인이 '가요무대'에 출연하기로 돼 있었는데, 며칠 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연을 미뤄야겠다고 전화했다"며 "그때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눴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해뜰날'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9세.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1975년 '해뜰날'이 히트하며 인기 가수로 도약했다. 이후 '네박자', '유행가', '차표 한장' 등 많은 히트곡을 내며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2025.2.7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인과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꼽히는 가수 태진아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아침 밥상을 차려놨는데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태진아는 '트로트 사대천왕' 가운데에서도 특히 송대관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인기를 끈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였던 두 사람은 종종 TV 예능 프로그램과 음악 무대에 함께 출연해 입담을 과시했고, '라이벌 콘서트'라는 이름의 합동 공연을 열기도 했다.

태진아는 자신의 대표곡 제목을 빗대 "송대관 선배는 내게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 명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며 "송대관 선배는 (나와의 관계를) '실과 바늘'이라고 말할 정도로 30년 가까이 방송에서 나와 라이벌을 했다. 그러다 보니 라이벌 콘서트도 함께 열었고, CF도 함께 여러 편 찍었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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