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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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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미안했다. 너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생산성 떨어지는 일에 왜 자꾸 관심을 두냐고 타박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구나. K팝 응원봉을 탄핵봉으로 만들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혹독한 추위로 몸을 던져야 했던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다. 너희들은 참으로 용기 있고,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숙함이라는 나의 걱정은 독선이었고, 오만이었다. 너희를 믿을게.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너희들의 마음가짐은 옳은 것이었고, 굉장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어. 그걸 몰라줘서 너무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하다. 가장 초롱초롱 빛나는 청년의 시절, 제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너희들, 가혹한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공허한 눈빛으로 작전지에 섰던 모습이 참 안쓰럽기만 했다. 그저 잘못된 위정자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누구보다 나약한 존재였기에 두렵고 떨린 마음이 앞섰을 거야. 너희들은 잘못한 게 없단다. 어른들을 용서하렴.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들 모두에게 미안해. 너희들은 충분히 주체적이고, 누구보다 명확한 사리 분별로 세상을 바라보는구나. 그저 철이 없고 좌충우돌하고 상식과는 담쌓는 모습만 바라봤던 내 모습이 한심할 정도다. 적어도 불의를 참지 않으며, 저항할 줄 알고, 분노했던 너희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였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또 한 번 위협을 받았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앞다퉈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응원봉을 흔들며 떼창을 부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우리 민주주의는 견고하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2024년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행복했고, 또 즐거웠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여전했다면 이 같은 소소한 행복들이 유효했을까. 시민들이, 청년들이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일상. 그것은 위정자들에게도 최우선의 가치여야 한다. 시민들이 또다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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