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출신 대통령 최규하(1919~2006년)의 삶과 행적을 우리 강원인은 얼마나 기억할까.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후 현재까지 13명의 대통령을 배출했고, 권한 대행까지 합할 경우 80년여 역사에서 고작 20명에 불과하다. 이 중 강원 출신은 원주가 고향인 현석(玄石) 최규하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그의 선양 사업은 미비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타 지역은 어떻게 선양 사업이 이뤄질까. 강원일보는 김대중 대통령 고향인 전남 목포를 찾아 지역 출신 대통령에 대한 선양 사업을 살펴봤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목포 삼학도에 들어가 목포외항부두에 도착하자 바로 건너편에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이곳은 2013년 6월 정식 개관한 이후로 목포의 빠질 수 없는 관광 코스로도 유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한의 화해·협력관계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목포 삼학도에 기념관을 건립하게 된 것도 유년 시절부터 정계에 입문하기까지의 일대기를 목포에서 만들었으며, 삼학도는 목포의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입구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탔던 의전차량이 이목을 끌었다. 검은색 캐딜락 차량은 큰 행사마다 김대중 대통령의 발이 됐으며, 2002년 10월 사열을 마지막으로 51군수지원단에서 보관하다 기념관에 양도됐다. 1층에 들어서자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한 실제 승용차가 로비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역시 서거 후 이희호 여사가 사용하다 기념관에 기증한 차량이었다.
2층에 올라가면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이 담긴 사진이 전시됐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 마치 그의 임기 당시 대한민국의 역사를 따라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나를 공산주의자라, 지역감정주의자라 매도했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부끄러워할 날이 올 것이다.’ 그의 어록을 현판에 새긴 공간과 함께 당선증, 친필 성명서, 노벨평화상 메달, 애장품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물건도 나열됐다.
기념관 밖 공원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묘비를 볼 수 있다. 이는 대통령 서거 후 서울 국립현충원에 설치된 것을 이희호 여사의 서거에 따라 대통령 묘와 합장해 기념관으로 옮겨 온 것으로 실제 묘는 국립현충원에 합장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국 김대중 대통령 관련 선양 단체 및 유족 등과 협업을 통해 전국에 흩어진 이 모든 자료를 한곳으로 모았다는 게 기념관 측의 설명이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생전 국민들과 찍은 사진을 제보받아 갤러리로 만들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지 15년이 지난 아직도 국민들이 그와 찍은 사진을 제보하기 위해 지금까지 연락이 온다는 사실 역시 믿기 힘들었다.
그 밖에도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전국 대학생 스피치 대회나 김대중 대통령 어록전 등 여러 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보고 목포시민들의 대통령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소년 김대중 공부방=“보통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은 드디어 목포로 이사했다. 그전에 나는 틈만 나면 뭍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혼자 일본에 가서 공부하겠다며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다.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독학을 하겠다고 했다 ... 여기에 자식들을 뭍에서 공부시키겠다는 어머니의 의욕이 합쳐져 생활터전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뭍으로, 큰 곳으로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배에 올랐다. 1936년 가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기록 중 하나다. 목포시 만호동에는 ‘소년 김대중 공부방’이 있다. 이곳은 김대중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집터로 당시 공부를 했던 다락방을 복원해 1층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련된 자료를 전시했고, 2층에는 그의 공부방을 마련했다.
목포공립제일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교)에 다녔던 소년기의 김대중 대통령의 공부방에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좌우명을 적어 논 액자와 책상, 시계, 교복 등이 재현됐다.
김대중 자서전에는 당시 창문으로 보는 목포 앞바다는 장관이었다고 쓰여 있다. 실제로 큰 창 너머에 보이는 삼학도의 모습은 절경이었으며, 어린 김대중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풍경을 바라봤을지 상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목상고 김대중 동상= 김대중 대통령의 모교인 목상고에는 그를 기리기 위한 동상이 있다.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교내에 세워진 동상은 김대중 대통령이 왼손을 들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었으며, 실물의 2배 크기다. 주변에는 어록이 적힌 비석들이 나열됐다.
대통령의 모교답게 목상고란 교명 역시 의미가 크다. 목포공립상업학교 22회 졸업생인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 전통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2001년 목포상업고에서 전남제일고로 바꾼 교명을 다시 목상고로 정한 것이다. 목상고의 상(商)은 ‘장사 상’ 외에도 ‘으뜸’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 인문계 으뜸 학교가 되자는 뜻이다.
또 최근에는 목상고 학생들이 전남 의(義) 정신과 공생의 가치를 조명한 ‘목상 민주평화길’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역사 탐구 동아리 학생들과 지도교사가 1년여간의 현장 탐방과 심층 자료 조사를 통해 발간한 책은 목상고의 역사, 인물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역시 동문들과 재학생 역시 대통령 모교라는 자부심이 뛰어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목포를 다니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쫓다 보니 든 생각은 대통령과 같은 고향이라는 애향심(愛鄕心)이었다. 정치적인 역량을 떠나 그를 기리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목포를 ‘김대중의 도시’로 만들었고,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발걸음을 모으는 듯 싶었다.

















